기하학적인 안상수체는 받침이 세로획의 정중앙에 오면서 정사각형 틀을 벗어난 ‘탈네모틀’ 글꼴이다.

40년 가까이 안상수(67)는 한글을 디자인하고 한글로 디자인했다. 한글의 강한 인력(引力)이 그를 끌어당겼다. 디자이너, 예술가, 교육자, 그리고 안상수체. 안상수를 규정하는 여러 수식어는 모두 한글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놓여 있다.

마흔에 보기 시작한 훈민정음을 지금도 읽는다. 읽을 때마다 새롭다. "만물의 뜻을 깨닫고 모든 일을 이루는 큰 지혜(而開物成務之大智)라는 구절이 있다. 한글은 '큰 슬기'(大智)다. 글자는 작은 목적을 위한 게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풀어헤치는 인간의 도구라는 통찰이 함축돼 있다. 문명이란 게 글자의 소산 아닌가. 한글과 놀다가도 이런 말이 새롭게 눈에 들어올 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가 세운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의 날개집(교장실) 컴퓨터엔 훈민정음 스캔 파일이 저장돼 있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안상수는 자주 파일을 들여다보며 훈민정음을 인용했다.

―한글의 어떤 점에 끌렸나.

"한글은 어리지만 당돌하다. 알파벳이 100살이라 치면 한자가 환갑쯤, 일본의 가나가 이십대 초반, 한글은 열두 살 정도다. 그런데 어른들보다 총명하다. 게다가 디자인된 글자다. 글자를 만든 배경, 논리, 철학, 사용 지침까지 다 나와 있다. 인류의 마지막 글자 디자인 프로젝트일 것이다."

―한글이 한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한글이 곧 한국의 문화다. 문화(文化)라는 말부터가 뜯어보면 '글자로 되는 것'이다. 글자가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뜻'이라고 하면 의미가 또렷한데 '개념'이나 '콘셉트'는 그보다 모호하다. (외래어가) 꼭 필요한 전문 영역도 있겠지만 일상의 언어는 대개 우리말로 하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경기 파주시 작업실에서 만난 안상수는 “한글 창제는 동시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등장과 함께 지구적 사건이었다”고 했다. 배경의 작품 속 ㅎ은 자유로운 붓의 선과 만나 긴장감을 자아내지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익살스럽기도 하다.

안상수는 디자인을 '멋지음'이라 말하기도 한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사라지고 디자인은 '멋을 짓는 일'로 명쾌하게 정의된다. 세련된 멋, 소박한 멋, 심지어 촌스러운 멋까지 아우르는 멋지음은 그저 모양만 내는 멋부림과도 구별된다.

―한글은 아름다운 글자라고도 한다.

"태생 자체가 아름답다. (훈민정음 첫 장을 열며) 당대의 국제 양식이었던 한문 가운데서 전혀 다른 게(ㄱ) 튀어나왔다. 최만리가 반대 상소를 올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훈민정음에도 '천고의 몽롱함을 열어젖힌다(大東千古開朦朧)'고 나온다. 그 전위적이고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600년 전에 구상했다는 게 놀랍다. 하나의 ㄱ이 나머지 한자를 압도한다. 그런 게 한글다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글만이 아름답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글자는 다 아름답다."

―글자가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가.

"글자는 가장 오랫동안 다듬어져 온 디자인이다. 지적(知的) 소통의 도구로서 손의 작용에 의해 변화해 간다."

―글자의 변화는 미세해서 잘 눈에 띄지 않는데.

"1970년대 조선일보와 지금의 조선일보 지면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외국 나가서 낯선 글자에 둘러싸이면 누구나 벽을 만난 기분이 된다. 글자가 만들어내는 인상이 사람들의 미감에 영향을 미친다. 글자 풍경이 짜임새 있는 곳도 있고 어딘가 허술하게 느껴지는 곳도 있다."

―한국의 글자 풍경은 어떤가.

"서울올림픽을 거쳐 90년대 들어 서서히 짜임새가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한글 생산의 진정한 국산화가 이뤄지면서 나타난 변화다."

―한글은 당연히 국산 아닌가.

"1980년대까지는 일본에 의지했다. 글자 생산 기구(사진식자기)가 전부 일제였다. 한글 글꼴의 원도(原圖)를 자기들이 못 만드니까 최정호(1916~1988) 선생에게서 사다가 식자기에 탑재해 다시 한국에 팔았다. 그러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글꼴이 늘어나고 디자인하는 사람도 많아지며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컴퓨터가 한글을 살려냈다. 본격화된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이제 꽃이 만발하는 느낌, 한글의 르네상스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자 사이에 ‘ㄱ’이 처음 등장한 훈민정음 첫 장.

안상수라는 이름도 안상수체(1985)가 '아래아한글'에 기본 탑재되면서 대중에 알려졌다. 안상수체는 한글을 네모 칸에서 해방시킨 탈(脫)네모틀 글꼴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안상수체는 어떻게 탄생했나.

"기역은 똑같은 기역이라는 게 한글의 개념이다. 이걸 그대로 따르면 탈네모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상상했다. 새로운 개성도 생기고 (네모틀에 맞춰 자모를 변형하지 않기 때문에) 글꼴 디자인도 쉽다. 단순하고 쉽다는 한글의 정신에도 어울린다."

―처음엔 비판도 많이 받았다.

"관습적인 모양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싫어했다. 모든 글자가 탈네모틀이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탈네모틀만큼 네모틀도 중요하다. 다만 탈네모틀로 한글의 영토가 넓어진 것이다. 또 돌연변이가 나타나서 새 길을 개척할 것이다."

―홍익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2013년 PaTI를 설립하면서 학교 이름에 타이포그래피를 내걸었다.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의 바탕이다. 글자는 시각디자인의 등뼈와 같다. 얼굴과 달리 눈에 안 띄지만 문제가 생기면 드러난다. 기본이 바로 서야 디자인에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