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느리게 가는 열차가 있다. 두 량(총 50석)짜리 열차가 자동차로 가면 50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2시간 넘게 서행한다. 정차하는 4개 역은 일본 시코쿠에 있는 벽지 시골 마을이다. 기차표 값은 6970엔(약 7만6000원), 일반 열차보다 5배 정도 비싸다. 그러나 지난해 좌석 예약률이 94%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의 바다인 세토 내해(內海)를 끼고 달리는 관광열차 '이요나다 모노가타리' 이야기다.

일본 세토 내해를 끼고 달리는 관광열차 '이요나다 모노가타리'는 시속 40㎞로 느릿느릿 달리며 주변 마을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지역 주민들이 역으로 나와 관광객을 반겨주는 게 특징이다. 사진은 이요나다 모노가타리가 시모나다역에 정차한 모습.
열차가 지나는 오즈성 주민들은 승객맞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깃발을 흔들러 나온다.

철도 강국 일본에서 오래된 철로는 골칫거리였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2040년 지자체 1799곳 중 절반가량인 896곳이 인구 감소 탓에 사라진다. 타는 사람이 줄어드니 시골 노선은 운행할수록 적자다. 폐선하는 곳이 늘어났고 역 주변은 공동화(空洞化)됐다. 이때 등장한 게 발상을 뒤집는 '서행 열차'다. 빨라야 한다는 열차의 지향점을 뒤집고 느림을 내세운 관광열차 70여 편이 작은 마을들을 누비기 시작했다. 버려지다시피 했던 마을은 관광지가 돼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 낡은 교통수단으로 취급받던 열차가 인구 소멸 시대의 구세주가 된 것이다. 그 반전 스토리를 들으러 일본으로 향했다.

◇지역 주민이 승객을 맞아주는 열차

이요오즈역에서 이요나다 모노가타리에 올라탔다. 시속 40㎞, 열차는 천천히 굴러간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너구리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른바 '너구리 역장'이다. 너구리가 많은 고로역 주변 마을 특징을 반영한 복장이다. 지역 주민들이 승객을 반기기 위해 꽃을 심어둔 사모나다역을 지나 이요카미나다역에선 모자를 쓴 강아지·고양이가 우리를 반겼다. 실제 강아지와 고양이가 역장이라고 한다. 주민들의 애완동물까지 손님을 맞으러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0년 넘게 지역 마을 사람들과 울고 웃던 기차역들은 2000년대 들어 연이어 폐쇄됐다. 이용자가 감소하자 운영할수록 적자가 났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마을 특성을 살려 역을 다시 가꿔 보자고 팔을 걷어붙였다.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환영의 뜻을 표하자는 등 아이디어가 나왔다. '손 흔들어주기'는 대박이 났다. 이요나다 모노가타리 관광열차의 다나카 히로노리 기획실 부장은 "예약률이 10% 늘었다"며 "손을 흔들어 주는 데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 승객도 많았다"고 했다. 손 한번 흔들었다고 눈물을 흘리다니. 다나카 부장은 말했다. "다른 어디에서도 이렇게 따스하게 환영해주는 느낌을 받기 어려우니까요."

오즈성(城)은 손 흔들기 이벤트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지역 전통 깃발을 흔들기로 했다. 오즈성을 지나갈 때 열차는 시속 10㎞ 정도로 속도를 더 낮췄고, 10여 명이 전통 복장을 하고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는데 많게는 40명 가까이 나온다고 한다.

◇내가 직접 열차를 운전하는 즐거움

시코쿠에서 1400㎞ 떨어진 홋카이도 리쿠베츠에서도 열차는 걱정거리였다. 인구가 줄며 이용객이 감소했다. 2006년 기차역이 문을 닫았다. 주변 마을에선 철로를 떼어다 고철로 팔기도 했지만, 리쿠베츠 열차는 2008년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 달리는 열차는 기관사가 바뀌었다. 관광객이 운전을 체험하도록 한 관광열차 '후루사토 은하선'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마다 마을 인구 2배 규모인 5000여 명이 열차 운전을 체험하러 찾아온다. 직접 운전석에 앉아보았다. 기차 열쇠를 끼우고 직원 지시에 따라 브레이크를 느슨히 하고 속도를 높이자 열차가 차츰 앞으로 나갔다. 승객은 직원 1명이지만 묵직하고 거대한 철 덩어리를 움직인다는 손맛이 짜릿했다. 아이치현에서 운전 체험을 하러 온 후카야 마사시(54)씨는 "열차를 직접 움직여 홋카이도 자연을 달릴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며 "지금껏 40차례 정도 역에 다녀갔다"고 했다.

이웅석 탐험대원

고철 취급받는 철로를 관광 상품으로 바꾼 주역은 마을 소상공인들(리쿠베쓰초 상공회)이었다. '열차를 살려보자'는 목표로 마을의 자영업자들이 직접 경영을 맡았다. 폐선 이전 지역 열차를 운전한 베테랑 기관사들을 데려와 1일 기관사들을 가르치는 데 투입했다. 버려졌던 역사는 깔끔한 호스텔로 변신했다.

열차가 단순히 교통수단에 머무는 시대는 지났다. 한번 깔린 철로는 지역을 떠날 수 없다. 지역 주민의 일상이 된다. 다나카 부장은 "열차는 지역 주민과 하나가 되었을 때 매력을 가장 잘 발산한다"며 "사람을 실어나르던 철도가 관광 상품이 된 것도 주민과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열차는 지역과 얼마나 함께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