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에게 '내 집'이란 너무 먼 얘기다. 서울의 주택 가격은 치솟기만 한다. 간신히 집을 산 직장인은 은행 이자 내느라 허리가 휜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세계 주요 대도시에서 그 대안 중 하나로 최근 '공유 주택'이 떠오르고 있다. 실용적인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대 초 출생)와 잘 맞는다. '청년 미래탐험대 100' 대원 둘이 유럽과 미국의 대표적인 공유 주택을 체험하고 왔다.


[40] 오스트리아 빈의 자륵파브릭… 공유경제서 미래 찾는 이승아씨

오전 7시에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야아옹." 옆집에서 나온 고양이가 곧바로 다가왔다. 그 옆집도, 그 옆집도 모두 문을 활짝 열어두고 아침 인사를 나눈다. 오스트리아 빈의 공유 주택 자륵파브릭(Sargfabrik)의 아침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옆집·아랫집·윗집과 한집처럼 지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자륵파브릭은 독일어로 '관(棺) 공장'이란 뜻이다. 한때 관을 만들던 이곳은 19세기 말에 지어졌고 1996년 빈을 대표하는 공유 주택으로 다시 태어났다.

100년 된 건물 개조… 공용 도서관서 인터뷰… 지하엔 이벤트홀 - ①112가구 200여명이 사는 오스트리아 빈의 공유 주택 자륵파브릭. ②공용 도서관에서 만난 건축가 프란츠 숨니치(오른쪽)씨와 이승아 대원. ③주민을 위한 공연이 종종 열리는 지하 1층 이벤트홀.

지난달 찾은 자륵파브릭은 시민·정부·금융의 힘이 합쳐져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6층짜리 건물 두 채에 총 112가구, 200여명 주민이 함께 살고 있다. 개인 공간은 비교적 작게 만들고, 세탁·요리·독서 등을 위한 공간은 함께 쓰도록 해서 주거 비용을 크게 줄였다. 집의 크기는 30㎡부터 130㎡까지 다양하다. 50㎡ 정도 되는 집에 살려면 보증금 2만5000유로(약 3287만원)에 월 임대료로 300유로(약 39만원)를 내면 된다. 빈의 평균 주거비(월 임대료 847유로, 침대 하나짜리 아파트 기준)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다.

자륵파브릭은 친하게 지내던 세 가족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주변 사람을 모아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공유 주택으로 고칠 건물을 물색했다. 마음만 맞는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자금이 필요했다. 여기서 시(市)의 지원이 투입된다. 자륵파브릭은 건축비의 45%를 시에서 대출받았는데 상환 기간은 35년, 이자는 연 1% 수준이었다. 빈의 전체 주택 중 약 45%(정부 직접 건설 포함)가 이런 식으로 지은 공공 주택이다. 이들은 건축가 프란츠 숨니치(Sumnitsch)씨를 고용해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7년에 걸쳐 의견을 나누고 건물을 개조했다.

자륵파브릭의 약 30㎡짜리 손님용 숙소에 묵었다. 조금 좁다 싶었지만, 아늑했다. '좁다'는 느낌은 그러나 건물을 둘러보면서 금방 깨졌다. 매주 공연 일정이 꽉 차 있는 이벤트홀, 널찍한 수영장과 사우나, 30명은 불러서 파티를 열 수 있는 공유 주방, 옥상 텃밭, 도서관, 회의실까지…. 건물 전체가 나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땐 각 조리 부스 옆에 있는 예약 보드에 '개인 식사' 혹은 '함께 식사 가능'이라고 써놓으면 된다. 그러고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쓰는 세탁기, 주중엔 몇 차례 들르지 않는 주방, 책을 쌓아놓기 위한 책장 공간을 위해 꼭 그렇게 많은 돈을 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세탁실에서 만난 크리스타 프라넥(Franek)씨는 중학생인 아들과 5층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륵파브릭엔) 공용 욕실, 도서관, 시설 관리자들이 있고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봐 주는 이웃도 많다"고 했다. 싱글 맘이던 2001년 두 살배기 딸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안톄 헬름스(Helms)씨는 "이곳이 아니었다면 딸이 남녀노소 많은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빈의 공유 주택에 닷새 동안 머물고 나니 '가성비'란 단어만으로 공간을 나눠 쓰는 트렌드를 설명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졌다. 개인 공간은 최소한으로, 하지만 혼자 쓸 필요가 없는 공간·물건이라면 함께 쓰며 더 넓게 활용한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산다. 그게 어쩌면 새 시대의 공간이 향하는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