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차려진 밥상의 시대에 산다. '가정대체식' 즉 HMR(Home Meal Replacement)에 관한 이야기다. 그 전조는 가공밥에서 시작됐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대한 열망보다 불편함을 유달리 싫어하는 성격이 한 몫 했다. 즉석조리식품 소매시장의 매출 7409억 원 중 가공밥 판매율이 49.2%를 차지했다(2017년 기준). 없는 게 없다. 전자레인지만 있으면 나만의 다이닝(dining) 한상차림이 가능하다. 밥을 짓지 않는다, 밥을 사면 되는 시대다.

'마트에서 장보기'라면 치(齒)를 떠는 남성들과 '삼시세끼 밥 차려 내기'라면 가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여성들의 합리적인 니즈(needs)를 충족시켜 준 것이 배달 앱과 모바일 푸드 마켓이다. 배달 앱으로 삼겹살을 주문하는 여친을 보고 남자는 소리친다. "불판에서 바로 구워야지, 느끼해서 그걸 어떻게 먹어!" 웬걸 주문한 삼겹살 구이는 신선한 채소, 쌈장과 함께 도착했다. 짚불에 초벌하고 불 맛을 내어서 냄새만 맡아도 침이 흐른다. 갓 구워져 나온 삼겹살을 집에서 편리하게 먹고, 추가로 주문한 옛날 도시락은 볶음김치, 김가루, 계란 프라이를 참기름 솔솔 뿌려 양껏 비벼 곁들였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는 접시 그대로 분리수거만 하면 되니 별도로 설거지를 하거나 집에 냄새 베일 걱정이 없었다. 여친은 마실 물이 부족하다며 아침에 먹을 샐러드와 생수를 새벽배송으로 주문했다. 아침식사 준비도 끝이다.

마트에 가서 직접 살펴보라. 브랜드 별로 국과 반찬, 단품 요리들이 즐비하다. 즉석식품의 한계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봉지째 제품을 데우거나 렌지로 가열만 하면 되는 즉석 완조리식품(Ready to heat)의 천국이다. 얼마 전 수산물 HMR 상품으로 생선구이와 조림이 등장하여 호평이다. 도심 밀집 주거형태의 최악의 메뉴 중 하나가 '생선구이', '청국장' 같은 방향성이 강한 음식들일 것이다. 때문에 어느 순간 생선구이는 8000원~1만원의 가격을 감당하고도 반드시 외식으로 사먹어야 하는 메뉴가 되었다. 홀로족의 라이프 스타일은 다만 편리성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여느 세대보다 건강에 대한 자구적인 솔루션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다. '곤드레 밥, 소고기 미역국, 깻잎찜, 콩자반, 연근조림, 갓 김치와 언양식 불고기' 한상이 차려졌다. 한정식 집 못지않은 건강한 메뉴들로 가득 채워진 HMR 밥상이다. 그럼에도 강한 양념과 자극적인 맛, 쉽게 물리는 식품의 식감들은 또 한번 진화된 식단을 요구했다. 그래서 발전한 것이 밀키트(Meal Kit: 신선 편의식품)이다.

CJ 쿡킷, 잇츠온 간편식, 쿠팡 밀키트, 마켓컬리 풀콜드, 심플리쿡 등등 어떤 경로로 접근해도 다양한 외식 메뉴와 셰프들의 노하우를 그대로 담은 기발한 메뉴들을 만날 수 있다. 셰프의 지인인 J셰프가 출시한 '마파두부'를 만들어 보았다. 손질된 식재료와 믹스된 소스를 이용해 조리법까지 상세히 들어있었다. 굳이 칼을 쓰는 정도라면 동봉된 두부와 채소를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썰어낸 것뿐이지만 성취감은 대단했다. 라면 물도 못 맞추는 사람도 집에서 혼자 힘으로 중식당의 식사메뉴인 마파두부 밥을 해낼 수 있으니 김선달이 입을 다물지 못할 일이다. 기름 떡볶이, 파스타, 미고랭, 불고기, 간장게장, 스테이크에 이르기까지 국적과 종류에 상관없이 소비자의 기호를 자극하는 다양한 신선 편의식품이 성장한다. 이쯤 되면 눈치를 채야 한다. 앞으론 이게 여친 솜씨인지, 장모님의 손맛인지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제사 상차림 음식도 맞춤으로 배달해 차려내는 세상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제대로 만들고 잘 만드는 브랜드를 찾아내야 하는 일이다.

물론 HMR 시장이 발전한다고 해서 즉석에서 오늘의 백반처럼, 한결 같이 음식을 만듦에 있어 오롯이 정성과 노하우가 그대로 스며들어 맛이 녹아 있는 우리 어머님들의 손맛을 이겨낼 방법은 없다. 좀 더 번거롭고, 수고스럽더라도 정말 맛있는 맛을 포기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편의식품은 우리의 가파른 일상에 잠시 쉼을 제공하는 '러닝메이트'로 충분하다.

정신우 셰프는
EBS ‘최고의 요리 비결’에 출연해서 이름을 알렸고, 저서 ‘365 샐러드’를 통해 맛의 미학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있다. c.f.c.i(조은정식공간연구소)에서 푸드 스타일링과 프렌치, 일식, 사찰 음식 등 다양한 요리법을 배우고 스스무 요나구니 셰프에게 사사 후 플레이트키친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최근 저서로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할 때가 제일 좋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