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미국 혁신기업 중에 페이팔이란 회사가 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스타트업 창업서로 밀리언셀러에 오른 '제로투원'의 저자 피터 틸이 20여년 전에 설립했다. 이메일을 이용해 누구에게나 쉽게 돈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성공했다. 요즘 뜨고 있는 '핀테크'의 원조 격 회사라고 할 만하다. 이 회사는 '페이팔 마피아'로도 유명하다. 테슬라, 스페이스X, 팔란티어, 유튜브, 링크드인, 옐프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혁신기업 창업자들이 이 회사 출신이다. 실리콘밸리 혁신 생태계가 얼마나 잘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꼭 실리콘밸리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등장했다. 올라웍스 마피아 얘기다. 올라웍스는 기술 소프트웨어 기업 창업이 드물던 2006년 카이스트 출신 류중희·김준환 박사가 설립한 기술 스타트업이다. 컴퓨터, 휴대폰 등에 올린 사진을 얼굴별로 자동 인식해서 분류해주는 기술을 가진 회사였다. 요즘 인공지능 기술 스타트업의 원조 격이라고 할까. 얼굴을 자동 인식해서 친구를 연결해주는 SNS 서비스 등을 시도했지만 잘 안 돼 고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발한 기술과 특허를 인정받아 2012년 인텔에 약 350억원에 인수됐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 스타트업을 인수한 극히 드문 사례 중 하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인수 당시 60명 정도였던 올라웍스 출신 중 거의 절반 정도가 창업에 나서거나 스타트업의 핵심 인재로 합류하고, 투자자로 변신하는 등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공헌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두 공동 창업자의 활약이 눈부시다. 1999년 SBS 인기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류 박사는 올라웍스가 인텔에 인수된 뒤 인텔 상무로 일하다 퇴사했다. 그리고 2013년 초기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퓨처플레이'를 설립했다. 이후 지난 6년간 거의 100곳의 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해 총 170억원을 투자했다. 한편 김 박사는 자동차의 카메라 센서를 통해 수집한 주행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스트라드비전'을 2014년 창업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자율주행차 관련 핵심 기술을 확보한 몇 안 되는 한국 스타트업 중 하나다. 스트라드비전에는 CTO(최고기술책임자) 등 올라웍스 출신이 10명이나 포진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고교 선배인 류·김 대표를 만나서 창업의 길로 빠진 경우도 있다. P2P 금융으로 국내에서 선두 업체 중 하나인 '렌딧'의 김성준 대표는 2005년부터 선배를 따라 올라웍스의 디자이너로 일했다. 김 대표는 "대여섯 명으로 시작한 주말 모임이 하나의 회사로 발전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발표하는 것을 같이 경험했다"며 "이 매력에 빠져 계속 창업을 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2012년 '노리'라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했고, 2017년부터는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를 창업해 활발히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는 김서준 대표도 올라웍스 인턴 출신이다. 김 대표도 "당시 경험이 이후 창업 여정에 큰 동기 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다. 올라웍스 CTO 출신인 김태훈씨는 '딥핑소스'라는 인공지능 이미지 처리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이 밖에도 '스무디'의 조현근 대표, '버즈뮤직'의 이정석 공동대표, '리버스랩' 한효승 대표 등도 올라웍스 기획자 출신이다.

어떻게 한 회사에서 이렇게 많은 창업의 씨앗이 뿌려졌을까. 이유가 있다. 첫째, 창업부터 제품 개발, 엑시트(회사 매각)까지 고난과 성공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점이다. 퓨처플레이 류 대표는 "저렇게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고 성공 후에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구성원들이 나중에 또 용감하게 창업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시대를 앞서간 기술 개발이다. 올라웍스는 스마트폰도 없고 인공지능 열기도 없던 2000년대 중반 사진을 통한 얼굴 인식 기술로 창업했다. 구성원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때 쌓은 기술과 경험이 향후 스트라드비전, 딥핑소스 등의 인공지능 기술 회사 창업으로 이어지는 데 디딤돌이 됐다.

셋째, 글로벌 대기업으로의 매각 경험이다. 올라웍스 직원들은 매각 후 인텔로 흡수돼서 일했다. 류 대표는 "구성원들이 실리콘밸리의 선진적인 문화를 함께 겪고 인텔 사내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며 "덕분에 이후 올라웍스 출신들이 창업한 회사들은 대부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당시 작은 회사로 생각했던 올라웍스를 인텔이 거액에 인수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좋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주저하지 않고 적절한 가격에 인수해 그 인재와 기술을 흡수하는 글로벌 기업의 전략을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 지금은 창업 국가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이스라엘도 1998년 ICQ라는 인터넷 메신저를 만든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미국의 AOL이 4억달러에 인수한 것이 창업 생태계 활성화의 씨앗이 됐다. 좋은 기술을 가진 우리 기업이 해외로 매각될 때 '국부 유출'이라고 걱정하는 일부 여론이 있다.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특허 등 기술은 해외 기업으로 나갈 수 있지만 결국 사람은 남는다. 이런 성공적인 엑시트로 성공한 창업가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창업에 도전하게 하면 한국도 세계적인 창업 국가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올라웍스 마피아'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