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만 해도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가 다른 보컬 경연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오래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최효진 CP)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의 장수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시즌 8로 돌아온다. 국내 랩 문화와 힙합 열풍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다는 평을 듣는 랩 경연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슈퍼스타K' 등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이 종언을 고한 상황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효진 엠넷 책임 프로듀서(CP)는 26일 상암동 CJ ENM에서 “장수 비결은 프로듀서도 그렇고 지원자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트렌디하고 세련되고 힙하고 개성들이 강하잖아요”라고 말했다. “대중에게 식상하지 않은 면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힙합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전 시즌에 PD로 참여한 최 CP는 “힙합 프로그램을 꾸준히 해오면서 느낀 것인데 다변화되고 있다”면서 “패턴이 쉽게 읽히지 않고, 그런 부분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꼽았다.
‘쇼미더머니’는 이번 시즌에 변화를 꾀하며, 식상함을 탈피하고자 했다. 기존에는 두명으로 구성된 프로듀서팀이 총 4팀이 등장, 지원자들을 뽑고 프로듀싱하며 우승 대결을 벌였다. 이번에는 두 개의 크루 체제를 도입했다. ‘40크루’에는 스윙스, 키드밀리, 보이콜드와 함께 이날 지병으로 참석하지 못한 매드클라운이 합류했다. ‘BGM-v크루’는 버벌진트, 기리보이, 비와이, 밀릭으로 구성됐다.
보이콜드와 밀릭은 래퍼가 아닌 비트를 만드는 비트메이커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최근 힙합신에서는 래퍼뿐만 아니라 참신한 랩 비트를 만드는 비트메이커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영주 PD는 “‘쇼미더머니’ 시즌 3부터 프로듀서 4팀 체제를 이어 왔다”면서 “이를 두 크루로 묶으니 네 명이 한 팀이라 취향별로 다양하게 프로듀싱이 가능해졌다”고 긍정했다.
이 PD는 프로듀서의 구실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예전 시즌에 프로듀스라 하면 권위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도 당연히 그런 지점이 있어야 하지만 그 보다 친구도 될 수 있고 동생도 될 수 있는 친근함이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봤다. 이번 프로듀서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성별의 균형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에 여성 프로듀서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카디 비(Cardi B)가 이 시상식 역사상 여성 최초로 베스트 랩 앨범을 받는 등 세계 힙합신에서도 여성 래퍼의 위상이 커지고 있다.
최 CP는 “남녀의 차이를 두고 있지 않는데, 올해 양 크루의 균형감을 맞추는 측면에서 올해 여성 래퍼는 참여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최근 보이그룹 ‘엑스원’을 탄생시킨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의 투표 조작 시비로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의견도 늘어나고 있다. 최 CP는 “‘쇼미더머니’는 매 시즌 공정했다”면서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최근 힙합은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뜨거운 장르 중 하나다. 이러다 보니 갈수록 여러 스타일의 랩이 나오고, 여기에 담는 태도와 가치관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 CP 역시 “‘쇼미더머니’ 시즌 4까지만 해도 랩 경연이 스킬에 많이 치우친 형태였는데, 최근 스타일리시한 음악이 생겼고 자연스레 프로그램에도 반영이 됐다”고 봤다.
“프로듀서들이 참가자들을 직접 발탁하고 (승리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프로듀싱하지만 갈수록 다양한 참가자를 원한다”면서 “예전처럼 어떤 스킬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개성이나 스타일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대중이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저게 힙합이 맞나’ ‘랩이 아니고 노래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쇼미더머니’는 힙합 (문화) 서바이벌이지 랩 경연대회가 아니라 가능한 일이죠.”
스윙스는 요즘 래퍼들에게 ‘포스트 모더니즘’이 투영되고 있다고 봤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났는데, 거칠게 요약하자면 ‘역사 허무주의’다.
“‘의미 없음’이 각 소셜 미디어,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는 게 보여요. 질서나 가치가 무너진 모습을 보죠. 유명한 사람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에서 보듯 ‘다 의미가 없다’는 거죠.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다 보니, 랩의 가치나 스타일이 많이 변했죠. 얼굴에 문신을 많이 한다든지, 염색을 다양한 색으로 한다든지, 옷을 지저분하게 입는다든지. 그런 정신 상태가 반영된 거죠.”
가사에 담는 내용과 랩의 발화 방식도 이전 세대와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래퍼들의 세계에서 형님 대접을 받는 스윙스는 자신들의 세대는 최소한의 틀이 있고 거기에 의미 있는 가사를 담으려고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는 것이 유행이라고 했다. 진지하고 자세한 가사를 쓰려고 하면 오히려 ‘설명충’이라고 구박 받는다는 것이다.
“힙합 음악은 언제나 최신의 것을 담아내기 때문에 우리 시대를 잘 반영하는 것 같아요. 가사도 일부러 안 들리게 하고. 그렇게 반영하고 변하는 거죠.”
‘쇼미더머니’ 시즌 8은 이날 밤 11시 첫 방송한다. ‘쇼미더머니’ 시즌2 우승팀 ‘소울다이브’의 넋업샨, 래퍼 펀치넬로, 시즌7 출연자인 래퍼 최은서 등의 출연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