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9년 위나라 조조는 촉나라 유비와 한중(漢中) 땅을 놓고 전투를 벌였다. 전황은 갈수록 조조에게 불리해졌다.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던 조조는 마침 저녁으로 닭고깃국을 먹다가 사발에 담긴 닭의 갈비, 계륵(鷄肋)을 본다. 살은 없는데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과 조조의 상황은 통하는 바가 있었다. 이날 조조군의 암호는 계륵이 됐다. 이후 조조가 군사를 물리면서 닭갈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위로 역사에 남게 됐다.

닭갈비는 춘천에서 다시 태어났다. 전국 닭갈비 음식점 상호에는 춘천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춘천시는 닭갈비로 연간 2000억원의 경제적 유발 효과를 올리는 것으로 추산한다. 직간접 고용은 2000명 정도다. 닭갈비의 도시답게 지난 2004년부터 해마다 축제도 연다. 춘천의 또 다른 명물인 막국수도 함께 나오는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다. 지난해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 기간엔 관광객 12만명이 찾아 70억원의 경제 효과를 올렸다.

지난 3일 강원 춘천시 동면에 있는 한 숯불 닭갈비 전문 음식점에서 관광객들이 닭갈비를 구워 먹고 있다. 이곳에서는 소양강과 봉의산 등이 한눈에 들어와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오른쪽은 소양강 강바람을 맞으며 춘천 전경을 감상하는 사람을 표현한 철제 조형물.

올해는 오는 11일부터 16일까지 춘천역 앞 옛 캠프페이지 부지 일원에서 '2019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가 열린다. 지난 2일 찾은 강원 춘천시 조양동 닭갈비 골목은 입구부터 고소한 닭갈비 냄새가 진동했다. 100여m 골목엔 닭갈비 음식점 19곳이 성업 중이다. 가게는 원조의 맛을 즐기려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왔다는 최민용(38·서울)씨는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꼭 먹고 가야 할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춘천 닭갈비에는 닭갈비가 없다. 홍동수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위원장은 "닭갈비는 닭의 갈비로 요리한 것이 아니라 닭의 살을 돼지갈비처럼 펴서 구워 먹어 닭갈비라고 불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작은 1960년 춘천시 조양동의 선술집이었다. 판잣집을 개조한 가게에서 술과 안주를 팔던 김영석씨 부부는 돼지 파동으로 돼지갈비를 구하기 어렵자 닭고기를 대신 내놨다. 홍 위원장은 "당시 닭갈비는 닭의 넓적다리 살을 돼지갈비처럼 포를 떠 양념에 재웠다가 연탄불에 구워 냈다"며 "기본 양념도 고추장이 아닌 달큼한 간장이나 소금이었다"고 말했다. 맛도 맛이지만 값이 좋았다. 1970년대 닭갈비 1대(250g)의 가격은 100원. 짜장면 1그릇 값에 먹을 수 있는 고기였다. 서민 갈비나 대학생 갈비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다. 1970년대 들어 김씨 가게 주위로 닭갈비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조양동 닭갈비 골목이 그렇게 생겼다. 춘천 시내 닭갈비 음식점만 352곳에 달한다.

구워먹을까, 볶아먹을까 - 닭갈비의 원조는 1960년대 먹기 시작한 숯불 닭갈비(위 사진)다. 돼지갈비처럼 얇게 펴 구워 먹었다. 담백하고 부드럽다. 아래 사진은 철판 닭갈비. 매콤한 양념에 양배추와 가래떡 등 사리를 넣고 볶아 먹는다.

닭갈비에도 유행이 있다. 1980년대가 되자 닭갈비 조리법이 연탄불에서 철판으로 바뀌었다. 2대째 닭갈비 음식점을 운영하는 춘천의 이성우씨는 "채소와 밥, 우동 면을 함께 볶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철판 닭갈비가 서민들을 끌어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가스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철판 닭갈비 확산에 불을 붙였다. 닭갈비계의 권좌를 차지해온 철판 닭갈비를 최근 들어 원조인 숯불 닭갈비가 밀어내고 있다. 기름기가 쏙 빠져 담백한 맛을 내는 숯불 방식을 관광객들이 다시 찾고 있다. 참숯의 은은한 향이 고기에 배어 감칠맛이 뛰어나고 육질도 부드럽다. 동면에서 숯불 닭갈비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견진씨는 "철판 닭갈비는 동치미, 숯불 닭갈비는 된장찌개와 곁들이면 최고의 궁합을 낸다"면서 "자극적인 음식보다 담백한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숯불 닭갈비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에는 닭갈비와 막국수 업체 13곳이 참여한다. 축제 기간 100인분의 막국수와 닭갈비를 요리해 관광객과 나눠 먹는 '막국수·닭갈비 나눔 행사'가 이어진다. 볼거리도 가득하다. 축제장엔 막국수와 닭갈비의 전통·유래를 알아보는 포토존이 설치된다. 전문 요리사가 직접 나서 메밀과 닭을 주재료로 하는 요리를 소개한다. 춘천막국수닭갈비 가요제와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 등의 축하 공연도 이어져 관람객의 흥을 돋운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의 명성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퍼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음식 관광 마케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