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열리는 '정읍 전국 민속 소싸움 대회'는 전북 정읍시에서 열리는 대표적 축제다. 올해로 23회째다. 그런데 이 행사를 위해 정읍시가 추경예산 1억1360만원을 편성하려다 무산됐다. 정읍시의회가 "소싸움은 동물 학대로 즐거움을 얻는 비윤리적 행위"라는 동물 보호 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예산안을 전액 삭감한 것이다. 매년 관광객 180만명이 찾는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 관계자들은 지난 1월 축제 때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동물 보호 단체 회원들이 축제장을 찾아와 "산천어 집단 살상 현장"이라며 반대 집회를 했다. 이들은 강릉 주문진 오징어축제, 양양 연어축제, 영덕 대게축제 등 수산물을 테마로 한 모든 축제에서 '맨손잡이 체험'을 퇴출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람의 인권처럼 동물권(動物權)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동물 보호 단체들의 주장이 반려동물이나 야생동물의 범주를 넘어 가축과 물고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정읍이나 화천처럼 지방 축제가 차질을 빚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동물의 권리를 고민해야 할 시대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동물 보호 단체들은 정읍시의 소싸움 추경을 무산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동물 단체 중 한 곳인 동물자유연대가 "전국의 소싸움 대회의 예산을 깎겠다"는 '예산깎겠소' 캠페인을 벌이면서 정읍을 목표로 삼았다. 단체들은 대회 일정에 맞춰 1인 시위를 펼치고, 관련 활동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릴 예정이다. 사단법인 한국민속소싸움협회 관계자들이 "우리 조상의 혼과 숨결이 살아 있는 전통 유산을 왜 훼방 놓느냐"고 따지자 "초식동물인 소에게 억지로 뱀탕과 개소주를 먹이고 훈련을 시키는 게 학대가 아니고 뭐냐"고 맞섰다.
정읍시의 소싸움 추경이 무산되자 충북 보은, 대구 달성, 경북 청도, 경남 의령 등 소싸움 행사를 개최해온 다른 지자체들은 "우리가 다음 표적이 되는 게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존폐(存廢) 여부를 고민하는 곳도 있다. 오는 4~8일 전국 소싸움 대회를 개최하는 대구 달성군 관계자는 "일부 주민이 소싸움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고 있어 내년부터는 규모를 축소할지 혹은 아예 폐지할지 여부를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최근 동물 공존 도시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할 때 빈집에 거주하는 길고양이·들개 등에 대한 보호 조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경기도 안양시는 정기적으로 해오던 쥐약 살포 작업을 최근 일시 중단했다. 쥐의 사체를 먹은 길고양이나 올빼미가 죽을 수 있다는 항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 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채은 대표는 "지방 축제에서 수산물을 먹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만, 동물들이 고통을 겪는 것만큼은 막겠다"고 했다. 어경연 서울동물원장은 "시민들이 동물을 동반자로 여기게 되면서 모든 동물이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