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서로 알고 지내던 이의 팔을 사이드미러로 들이받는 사고를 낸 뒤 괜찮다는 피해자의 말에 그대로 사고현장을 떠났더라도 ‘뺑소니’로 볼 수는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된 김모(64)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25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김씨는 2016년 10월 강원 삼척시의 한 전통시장 앞에서 택시를 운전하다 A씨의 왼팔을 사이드미러로 친 뒤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 당시 김씨는 조수석 창문을 열고 피해자에게 몇 마디 건넨 뒤 별 다른 구호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당시 "미안하다. 괜찮냐"고 주장했지만, 피해자는 "김씨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1심은 "김씨가 (서로 알고 지내던 피해자에게) 전화번호를 건네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은 잘못은 있으나, 상해 정도와 당시 이뤄졌던 대화내용 등에 대한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김씨 말처럼 피해자가 괜찮다고 했다가 안부 전화도 하지 않자 화가 나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법원은 뺑소니 혐의로는 처벌할 수 없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과실치상이 성립할 수 있다고 봤다. 법원은 이 사건을 재판에 넘긴 것이 법률과 규정에 맞지 않다고 봐 이 사건의 공소를 기각했다.

반면 2심은 "피해자가 괜찮다고 했어도 차가 보행자를 친 사고"라며 "김씨가 인적사항을 알리지 않고 사고현장을 떠나 사고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김씨가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점을 고려해 벌금 250만원의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또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김씨는 A씨가 괜찮다고 해 비교적 경미한 사고로 판단하고 사고 장소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도주 의도를 갖고 사고 현장을 이탈해 사고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원심 판결에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고,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 원칙에 비춰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