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보고를 한다길래 리포트를 읽으면서 보고하는 건 줄 알았어유. 근디 뭐 땜시 지를 불렀나 했쥬."(소리꾼 장사익)
사전 정보 없이 온 관객이라면, 지난 29일 저녁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아라리 봄봄'을 보고 국악·한국무용·궁중의식·무술을 섞은 버라이어티 공연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문화재청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재재단의 '2019년 대(對)국민 업무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의 형식을 취한 실험적인 보고, 또는 보고의 형식을 취한 이색적인 공연이었다.
객석의 800여 명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사는 완급(緩急)을 넘나들며 물 흐르듯 진행됐다. 옥색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은 한국의집예술단 단원들이 최근 방탄소년단 덕에 세계적 관심을 받은 삼고무(三鼓舞)를 흥겹게 선보였다. 이어 '풍류'라는 키워드와 함께 인천공항과 서울 5대궁, 한국의집 등에서 재단이 여는 전통문화 행사와 미얀마·캄보디아 해외 문화재 복원 사업이 영상을 통해 소개됐다.
궁궐 호위군 사열 의식인 '첩종(疊鐘)'도 무대 위에 펼쳐졌다. 환도 2자루를 든 군관이 장창을 든 상대 네 명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현란한 무예 시범에 박수가 터졌다. 돌연 무술 대결이 씨름 대결로 바뀌더니 재단과 문화재청이 지난해 이룬 '씨름 남북 공동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설명하는 영상으로 연결됐다.
과거 전통 공연의 기획·연출자로 이름을 날리며 '딴따라의 괴수'라 불렸던 진옥섭 재단 이사장이 사회를 맡아 "살풀이춤은 영어로 다이어트 댄스" "공공기관에 와 보니 부족사회더라, 인원 부족과 예산 부족이 사는" 등의 입담으로 객석을 웃겼다. 행사는 김남기 명인과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의 무악극 '아라리 봄봄'을 거쳐 김운태의 격렬한 채상소고춤으로 절정에 달했고, 장사익의 처연하면서도 폭발적인 탁성(濁聲)이 대미를 장식했다. 모든 출연자가 '아리랑'을 부르는 커튼콜에서 진 이사장이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얼른 찍으세요! 블로그, 카페, 인스타그램에 많이들 올려 주세요." 다들 휴대전화를 꺼내 치켜드느라 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