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문학상이자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맨부커상’에서 ‘맨’이 빠지게 됐다고 27일(현지 시각) 영국 BBC가 보도했다. 맨부커상을 18년간 후원하고 있는 세계 최대 대체투자 운용사인 ‘맨그룹’이 내년부터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맨부커상은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받은 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날 BBC에 따르면 맨그룹은 성명을 내고 "맨부커상을 후원한 건 특권"이었다며 맨부커상 후원을 중단한다고 알렸다. 맨그룹은 2002년부터 18년간 매년 160만파운드(약 23억6600만원)씩 맨부커상을 후원해왔다.
맨부커상 재단은 "새로운 후원자와 협의하고 있으며 2020년엔 새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헬레나 케네디 맨부커상 재단 최고경영자(CEO)는 "맨그룹의 후원에 정말 감사하다. 모든 좋은 일은 끝났고 (맨부커 재단은) 새로운 후원자와 함께 다음 단계로 향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또 올해 맨부커상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모두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윌 곰퍼츠 BBC 아트 부문 편집장은 맨그룹이 매년 맨부크상에 상당한 액수를 후원하는데도 자신들이 푸대접받는다고 느껴왔다고 전했다. 그는 "(맨그룹이) 시장이 안정되면 새 후원자를 찾을 수 있다고 맨부커상 재단이 확신한다는 얘기를 듣고 실망했다"고 했다.
맨부커상 재단과 맨그룹 사이는 이전부터 삐걱거렸다. 원래 영국·아일랜드를 비롯한 영연방에 속한 국가만 맨부커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2014년 범위를 확대하면서부터 두명이나 미국인이 수상자로 선정되자 맨그룹과 맨부커상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맨부커상을 두차례나 수상한 소설가 피터 캐리도 "(맨부커상이) 문화적 취향을 잃을 수 있다"며 선정 대상 확대에 비판적이었다.
소설 ‘버드송’으로 잘 알려진 유명 소설가 세바스티안 폴크스는 이런 맨그룹을 비판했다. 그는 "문학상을 후원해선 안 될 사람들"이라며 "(맨그룹은) 오히려 문학상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사람들이며 나 또한 그들로부터 돈을 받아도 하나도 좋지 않다"고 했다.
이에 맨그룹 측도 곧바로 반박했다. 루크 엘리스 맨그룹 CEO는 "문학과 예술은 공적자금이 빠져나가는 자리를 채워줄 챔피언(기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맨그룹은 이 상을 후원하며 2500만파운드(약 370억원)를 상금 등으로 지원했다.
맨부커상은 1969년 영국의 종합물류유통회사 부커사가 제정한 문학상이다. 해마다 영국 연방국가 내에서 영어로 쓴 소설 중 수상작을 선정 발표한다. 맨부커상을 후원하는 맨그룹은 1783년도에 창립된 세계 최대 상장 대체투자 운용사 중 하나다.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은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2005년부터 제정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맨부커상의 외국 소설 문학상이다. 최종 선정된 작가와 번역가 모두에게 상금 5만파운드(약 7400만원)를 각각 나눠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