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을 노래한 가수가 있다. 이북 출신도 원로 가수도 아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그는 후렴구에 "평양냉면 먹고 싶네~"를 반복한다. 노래를 자꾸 듣다 보니 평양냉면이란 걸 나도 한번 먹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냉면 좀 안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래옥은 뭔가 깔끔하고 귀족적이고, 을밀대는 좀 진하고 서민적이야." 우래옥이나 을밀대가 뭔지도 모르면서 "을밀대 가자"고 했다. 난 서민적인 걸 좋아하니까. 참고로 을밀대가 집에서 더 가까웠다. 낯선 피맛골에 온 이방인처럼 조심스레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는 이런 쫄깃한 긴장감이 있다.
슴슴했다. 슴슴했다는 심심하다의 북한식 말인데 굳이 칭찬하자면 군더더기 없는 맛이었다. 누구는 이걸 담백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허전함이 그대로 드러난 맛이었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천장에 그 슴슴한 맛이 계속 떠오르는 게 아닌가. 처음 당구를 쳤을 때 칠판이 당구대로 보였던 것처럼. 아, 이건가? 지워지지 않는 슴슴함이 머릿속과 혓바닥에 계속 맴돌았다.
다음 날. 땡땡이를 치고 당구장 가는 기분으로 다시 을밀대를 찾아갔다. 과연 슴슴하고 슴슴했다. 나는 이 슴슴함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비 와서 먹고, 눈 와서 먹고, 더워서 먹고, 형이랑 먹고, 동생이랑 먹고, 친구랑 먹고, 매니저랑 먹고, 혼자서 먹고, 해장으로 먹고…. 짜장면과 라면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그렇게 몇 년 먹다 보니 냉면값도 올랐고, 맛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주환아, 평양냉면 어디가 맛있어?" 나는 어느새 친구들에게 전화를 받는 친구가 돼 버렸다.
"을밀대는 서민적이고, 우래옥은 귀족적이야. 필동면옥은 을지면옥이랑 평양면옥이랑 같은 계열이고… 봉피양은… 정인면옥은… 강서면옥은…." 그렇지만 모두 슴슴하다. 이 슴슴한 맛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깊고 우아하고 품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