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중개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디자인회사이기도 하다. 앱 디자인을 넘어 문구, 생활용품 등 각종 굿즈를 만들고, 최근엔 로봇도 디자인했다. 김봉진 대표는 명함에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새기고 다닌다.

이들이 서체 제작사 산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작년 말 공개한 무료 서체 '한나체 Pro(프로)'가 화제다. "서체 디자인사(史)에 기록돼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겉보기엔 보통 서체와 다르지 않지만 음식 이름을 타이핑하는 순간 새로운 경험을 한다. '치킨'을 입력하는 도중 치킨 그림이 나왔다 사라지고, '피자'를 입력해보면 피자 그림이 나왔다 사라진다. 별도의 프로그램 없이 아래아한글이나 MS 워드 등에서 쓸 수 있다.

서체 ‘배달의민족 한나체 프로’에 숨겨진 음식 그림들. 총 183개다.

어떻게 만든 걸까. 한글은 총 6만5536자를 쓸 수 있지만, 그중 쓸모 있는 글자는 약 2350자. 나머지는 '칰' '핒' '갋' '픏' 따위의 별 쓸모없는 글자로, 전문용어로는 '빈 글리프'라고 한다. 이들은 실제 쓰이는 글자는 아니지만 타이핑 과정에서 지나가듯 쓰게 된다. 한나체 프로는 이 점을 이용했다. 이를테면 '칰' 글자를 치킨 그림으로 바꿨는데, '치킨'을 칠 때 ㅊ→치→칰→치키→치킨 순으로 입력하므로 치킨 그림이 나왔다 사라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핒'은 피자, '팓'은 마파두부, '럳'은 샐러드 그림으로 바꿔서 단어 입력 도중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림 183개가 이렇게 숨겨져 있다.

전문가들은 "조합 문자라는 한글의 특징, 두벌식 한글 자판의 입력 체계 등이 합쳐져 나온 참신한 시도"라고 평한다. 우아한형제들 디자인실은 "잡담하듯 일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했다. 타이핑 도중 나오는 낱자들을 이들은 '임시생성글자'라고도 명명했다. 디자이너 채혜선씨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독일·일본 등 외국 디자이너들이 특히 관심을 보였다"며 "한글의 특징을 십분 활용했다는 사실에 흥미로워했다"고 했다. 성재혁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기존 서체 디자인이 문자의 형태에 초점을 뒀다면, 한나체 프로는 문자의 구조와 작동 시스템에 주목했다"며 "문자와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충돌하는 방식을 통해 서체를 통한 표현의 범위를 확장시켰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