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022년부터 초등학교 수학·과학·사회 교과서 발행 체제를 국정(國定)에서 검정(檢定)으로 바꾸기로 했다. 초등 교과서는 어린 학생들의 가치관 확립 등을 고려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영어·예체능 과목을 제외하곤 국정으로 발행해왔는데, 이제 주요 과목들도 검정으로 전환된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검정 심사 절차는 대폭 완화했다. 지금까진 검정 심사에서 수정을 지시하면 집필진이 이를 반드시 따라야 했는데, 앞으론 수정 사항을 집필진에 권고만 하고 반영 여부는 집필진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당장 내년에 중·고교생이 배울 역사 교과서부터 새 검정 절차를 따른다. 검정 심사가 무력화돼 편향된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배포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초등 '사회'까지 검정으로

교육부는 4일 "초등 3~6학년 사회·수학·과학 교과서를 검정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은 국가가 책임지고 교과서를 만드는 체제이고, 검정은 출판사가 집필진을 꾸려 교과서를 만들어 정부 심사를 거쳐 교과서를 발간한다. 현재 초등 1~2학년은 여섯 과목 모두 국정이고, 초등 3~6학년은 영어·예체능은 검정, 국어·도덕·수학·사회·과학은 국정이다. 2022~2023년엔 초등 3~6학년 교과서 중 국어·도덕만 빼고 모두 검정으로 전환된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교과서는 정치색과 자극적인 내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회 구성원 간 합의된 상식을 담는 게 원칙이다. 특히 역사가 포함된 사회 과목은 더욱 더 중립적인 내용을 담으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검정 교과서로 발행하면 교육 현장 혼란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병식 서울교총 회장은 "이념적으로 편향된 집필자들이 자기 입맛에 따라 교과서를 쓰고, 학교에선 전교조 등 일부 편향된 교사들 뜻대로 교과서가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앞서 현 정부는 지난해 초등 6학년 국정 사회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는 등 정부 역사관에 따라 내용을 수정해 논란이 됐다.

◇ 검정 심사는 대폭 완화

교육부는 이번에 '검정 심사 절차'를 대폭 완화했다. 지금까지는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부에 제출하면 교육부가 심의해 수정 사항을 집필진에 지시하고, 지시 여부가 반영됐는지를 확인해 통과시켰다. 지시 여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불합격시켜 학교에선 해당 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검정 심사 때 수정 사항이 있더라도 '권고'만 하기로 했다. 집필진이 정부의 수정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해당 교과서는 그대로 출판돼 교실에서 사용된다. 교육부 측은 "집필자에게 무조건 고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의 직무 유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는 "사회·역사 과목처럼 민감한 과목을 검정으로 전환할 거면 정부가 심사와 감독을 더 철저히 해야 하는데, 교육부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완화된 검정 심사 제도는 내년 중·고교에 도입될 새 역사 교과서에도 적용된다. 현 정부는 전 정부가 만든 국정 교과서를 폐기한 뒤, 새 검정 역사 교과서를 지난해부터 개발 중이다. 정부는 집필진이 교과서를 쓸 때 따라야 하는 집필 기준 등에서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 '북한 도발' '북한 인권' 등을 빼 좌편향 교과서 논란을 빚었다. 여기에다 정부가 검정 심사 절차마저 대폭 완화하면 집필자들이 좌편향 교과서를 만들어도 막을 길이 없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좌편향 집필진들이 북한을 미화하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폄하하는 교과서를 만들어 어린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편향 집필진과 전교조 교사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정권이 바뀌어도 좌파 교과서를 계속 만들고 학교에서 쓰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