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35년 한 문화재 수집가가 옥색이 유난히 돋보이는 고려청자 '천학매병(千鶴梅甁)'을 한 일본인에게서 2만원에 사들였다. 당시 서울의 기와집 스무 채 값이다. 그게 국보 제68호로 지정받은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이다. 2년 뒤 그는 영국인 수집가에게서 고려청자 20점을 인수하는데, 그 가격은 무려 서울의 기와집 400채를 사들일 수 있는 거금이었다.
빼어난 눈썰미로 우리 고서화와 도자와 골동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모으는 데 한평생을 바친 이 통 큰 문화재 수집가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다. 그는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추사 김정희 등 조선의 서화를 수집하고 고려청자와 분청사기·조선백자 등을 사 모으는 데 재산을 아낌없이 썼다. 1938년에는 서울 성북동에 개인 문화재 박물관 '보화각'을 지었다. 그 설계를 맡은 이가 건축가 박길룡이다. 이 박물관은 나중에 '간송미술관'으로 개명하고 해마다 봄가을로 수장품을 일반에게 공개했다.
전형필은 서당에서 '소학' '사략' 등을 읽고 12세 때 서울의 어의동 공립보통학교(지금의 효제초등학교)를 나와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휘문고보 동문으로 역사소설가로 이름을 떨친 박종화가 그의 외종형이다. 그는 휘문고보 시절부터 고서를 모으는 취미를 기르고 나중에 고서화와 옛 책을 수집하려고 인사동의 한 고서점을 인수했다.
전형필은 서울에서 큰 상권을 일궈 부를 쌓은 선대의 재산을 24세 때 상속받았다. '조선 거부(巨富) 40명' 안에 들 만큼 큰 재산이다. 그 젊은 나이에 위창 오세창의 영향으로 서화, 전적 등을 사 모으는 문화재 수집가로 나섰다. 그게 '문화보국(文化報國)'의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사장 인촌 김성수나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창랑 장택상, 삼성의 창업자 호암 이병철 등과 더불어 전형필은 우리나라 문화재 수집가로 으뜸으로 꼽을 만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