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첫머리에 일란성 네쌍둥이 의자가 있다. 합판 하나로 똑같이 생긴 의자 네 개를 만들었다. 이름은 '이코노미컬 체어(economical chair)'인데, 앉기에 편하고 보관할 때 겹쳐 쌓을 수 있어 더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특징은 버리는 합판 조각이 전혀 없도록 디자인됐다는 것이다.
서울 장충동 '파라다이스 집'에서 열리는 이 전시의 이름은 '쓰고 쓰고 쓰고 쓰자'다.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을 오마주한 프로젝트로, 이름도 거기서 따왔다. 최근 디자인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디자이너 문승지(27)의 첫 개인전이다. 문씨는 "20년 전의 아나바다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선 아나바다를 환경 운동으로 해석했다"고 했다. 그는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 여섯 살이었다. "아직도 아나바다 운동에 대한 기억이 또렷해요. 재활용 대란이 일어나고 환경 문제가 떠오르는 요즘, 아나바다 정신에 다시 주목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전시장은 아나바다 순서 네 부분으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앞서 설명한 의자들이 '아껴 쓰고'에 해당한다. 전시품 중엔 낡은 의자나 소파 가죽을 투명한 우레탄 소재로 교체한 것도 있다. 가죽 속에 숨겨져 있던 알록달록 스펀지가 그대로 드러나 그 자체로 장식이 된다.
그가 음료 캔을 직접 주워다가 녹이고 굳혀 만들었다는 알루미늄 의자 옆에는 '500' '320' 등 숫자가 적혀 있다. 의자를 만드는 데 들어간 캔 개수다. 마지막에는 이면지로 만든 화분 수십 개에 꽃이 꽂혀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컵에 이면지 수십 장을 욱여넣고 풀을 부어 굳힌 화분이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