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 애 주양육자가 누구야!"

어느 날 업무와 육아 부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내가 외쳤다. 육아는 내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러나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아이 목욕시키는 일을 '나는 서투니까'라는 핑계로 미룬 게 사실이다. 아내의 불만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지는 부담

우리는 생후 18개월 딸을 키우는 기자 부부다. 맞벌이다 보니 누가 더 육아에 기여하는가를 놓고 가끔 아내와 갈등이 생긴다. 아내도 나도 똑같이 취재기자로 일하지만 어린이집 비용 지원 신청, 새로 생긴 아동수당 신청, 전기료 할인 신청, 예방 접종 등 영·유아 검진을 챙기는 일은 아내의 몫이 된다. 내가 둔한 아빠여서인지 모르겠으나 아빠가 놓치는 것들을 엄마들은 잘 잡아낸다. 아이가 감기로 고열에 시달릴 때 밤에 깨서 우는 아이에게 먼저 달려와 체온을 재는 사람은 보통 아내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 '부(副)양육자'로 한 발 빠지려 한다.

‘아이가 행복입니다’ 지면 담당자인 기자의 가족 사진. 육아의 책임을 아내에게만 미뤄두지 않기 위해 주말마다 딸과 놀이방·박물관 등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태도를 반성하며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는 엄마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운다'는 점이다. 산부인과 검진비 등을 지원받는 '국민행복카드'부터 엄마 이름(건강보험 가입자 중 임신부)으로 만든다. 아내는 미·북 정상회담을 취재하러 간 싱가포르에서 자기 명의로 된 이 카드로 어린이집 비용을 결제하면서 "이 카드는 왜 엄마 이름으로만 만들게 돼 있는 거냐"고 했다.

자주 다니는 대형 마트에 임신부와 만 7세 미만 아동이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육아 물품을 할인해주는 제도가 있다. 제도 이름이 '맘키즈 할인'이다. 마트에 문의해보니 사실 아빠 이름으로도 가입해 이용할 수 있다. 가끔 아이가 먹는 이유식이나 음료수 등을 보면 '엄마의 눈높이로 만들었습니다'는 문구가 있다. 이런 환경이 아빠에게 육아를 회피할 구실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주양육자 도전하기

아내는 평일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힘드니 주말에는 박물관·수영장·놀이방에라도 가서 아이와 놀아주고 싶어한다.

아내가 '주양육자' 발언을 한 이후 '나 혼자 아이를 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얼마 전 회사 동료 결혼식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면서 "결혼식 갔다가 놀이방에도 다녀올 테니 푹 쉬어"라고 했다. 결혼식장에 가서 아이와 이곳저곳 구경하고, 식당에 가서 아이가 먹을 만한 음식을 골라 먹였다. 처음에는 '회사 선후배들이 날 이상하게 보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주는 음식을 잘 받아먹는 아이를 보고 '잘하는 거지'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주말에는 '주양육자·부양육자' 논쟁을 피해갈 수 있었다.

아이와 평일에 많이 시간을 못 보내주니 주말에 엄마 없이 아빠와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좋은 육아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형 마트에 딸린 놀이방에서 아이와 함께 블록도 이리저리 던지면서 놀고, 소꿉놀이도 하면 시간도 잘 간다. 놀이방에선 늘 딸 옆에 앉아 있다. 딸도 제법 자라 내가 앉아 있으면 눈높이가 맞는데, 그러면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놀고 나서 아이에게 과자를 주면 아이도 과자를 집어 내 입에 넣어준다. 딸에게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이 좋다. 짧은 주말이지만 집중 트레이닝을 하다 보면 '이 정도면 육아 중수는 되지 않을까' 싶어 둘째를 낳더라도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육아에 더 익숙해져 우리 집에 '주양육자' '부양육자' 구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딸에게 동생을 만들어주는 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