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시교육청이 "IB(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공교육에 도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 IB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IB는 국제기관이 만든 교육과정·시험으로, 토론·발표 중심으로 수업하고 학생 생각을 묻는 논술형 시험으로 성적을 매긴다. "획일화된 우리 교육으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헤쳐갈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 같은 논의가 시작됐다. 이미 올 초 제주와 충남교육청이 도내 초중고교 중 희망 학교에 한해 IB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교육부도 IB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긴 상태다. 그러나 일각에선 "지금도 대입 때문에 혼란이 많은데 외국 교육제도인 IB까지 도입하면 더 큰 혼란을 부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구·제주·충남 "IB 도입하겠다"

IB의 핵심은 ▲토론형·과정 중심 수업 ▲논·서술형 평가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가지고 토론하고 발표한다. 예컨대 역사 시간에 기존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하면서 임진왜란을 배울 때 '징비록'과 '난중일기'를 갖고 집중 토론하는 식이다. 시험도 단편적인 지식을 맞히는 게 아니라, 배운 내용을 토대로 자기 생각을 쓰는 형태로 치러진다. 현재 국어 내신 시험이 '다음 중 글쓴이가 의도한 바로 알맞은 것은?'이라고 묻고 답을 적는다면, IB 시험은 '배운 작품을 예로 들어 작품의 제목이 어떻게 주제를 전달하는지 논하시오' 같은 문제로 나온다.

가까운 일본이 2015년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아시아 국가 최초로 공교육에 IB를 도입했다. 현재 일본 초·중·고교 59곳이 일본어로 번역한 IB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200여곳까지 늘리는 게 정부 목표다. 원하는 초·중·고교가 문부과학성(우리나라 교육부)에 IB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정부가 교사들을 연수시켜 주고 비용을 대는 식이다.

대구·충남·제주교육청은 올해 안에 IB 본부와 협상을 벌여 IB 프로그램을 한글로 번역하겠다는 계획이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희망 학교를 대상으로 'IB 과정 시범학교'를 운영하다 차츰 적용 학교를 늘려가겠다"며 "궁극적으로 10여년 후 '한국형 IB'를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혁신 대안" vs "또다른 혼란"

IB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IB가 주입식 지식 테스트 위주인 우리나라 교육을 혁신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한다. 서울시교육청의 IB 도입 연구 용역을 담당했던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 문제는 수능과 내신을 둘러싼 정시·수시 논란에서 단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IB는 수능의 강점인 공정성과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강점인 공교육 정상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IB가 지난 50여년간 쌓인 노하우로 논·서술형 문제를 많이 보유하고 있고, 시험 채점도 IB 본부에서 직접 진행하기 때문에 논·서술형 시험이 갖고 있는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도 '학생과 학부모 수요자 중심의 입시제도 개편안을 제안한다'는 연구 보고서에서 "IB는 선진적인 교육과정과 평가의 공정성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유력한 대체안"이라며 "지금부터 장기적으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IB가 도입되면 안 그래도 논란이 많은 우리 교육에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지적도 많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좋아 보이는 외국 제도를 이식한다고 우리나라 교육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것 자체가 사대주의"라면서 "학부모나 학생들이 생소한 제도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또다시 사교육을 찾고 이것이 입시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고 했다. 개별 학교가 매년 IB 본부 측에 로열티 명목으로 약 1100만원을 내야 하고, 모든 교사가 IB 본부가 규정한 연수와 워크숍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도 과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학생의 깊은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IB의 취지는 좋지만 현재 2015 개정교육과정의 협력·토론식 수업도 잘 이뤄질지 의문인 상황에서 섣부른 IB 도입 선언이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며 "교사들이 토론식 수업을 진행할 준비가 돼 있는지, 우리 교육과정 내에서 제대로 토론·협력식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지부터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우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