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시크니스(beauty sickness)’는 여성들이 동년배 모델·연예인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외모를 탓하고,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모든 문제는 여성에겐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다. 나도, 당신도 이젠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확실히 우리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나는 정말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차 성징기에 스테로이드가 든 한약을 먹어 13㎏이 쪄서 통통한 소녀가 된 다음부터 항상 살이나 몸매는 나의 관심거리 중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그래도 요즘 소녀들을 보면 내 통통했던 소녀 시절은 그나마 나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서 한참 돌아다니던 자료를 보면 여고생의 교복 상의 크기가 6~7세 아동 상의와 비슷한 비교 사진이 있다. 우리나라도 체형이 서구화하면서 키 큰 여학생이 많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런 여학생은 많지 않고 대신 코스모스처럼 말랐다. 게다가 유치원생들도 자신이 뚱뚱하니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한다.

내가 중고생일 때는 어른들이 "대학 가면 살이 다 빠진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해 주었다. 그래서 적어도 소녀들이 떡볶이나 햄버거를 실컷 먹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다들 먹성이 좋았다. 그러다가 최초의 걸그룹이 몇 등장하면서 떡볶이를 뺨이 미어져라 먹던 소녀들은 이제 더 이상 생긴 대로 살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어린 나이부터 아름다워져야 했던 것이다. 그때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소녀들은 자신과 또래이지만 아름답고 섹시하며 무엇보다 날씬하고 마른 연예인들을 보면서 음식을 제대로 넘기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세상이 소녀들에게 일찍부터 아름다워질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또래 모델이 쏟아지고 있는데 날씬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을 용기가 있는 소녀가 몇이나 되겠는가.

어째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게 되었을까? 나는 최근에 건강이 안 좋아져 살이 많이 쪄서 이제 아예 거울을 보지도 않지만―사실 이것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몇 년간은 건강과 미용을 위해 운동을 정말 많이 했고 먹는 것을 조심했다. 옥수동에 살면서 논현동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는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 빠르게 2시간 정도 파워 워킹을 하며 출퇴근했다. 목동에 살면서 홍대 쪽에 자주 다닐 때도 너무 춥거나 너무 덥지 않은 한 걸어다녔다.

'홈짐(home gym)'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집에서 중량 운동을 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건강을 위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미용을 위한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도 알 수 없어졌다.

수년 전 '글을 쓰는 젊은이'라는 테마 아래 한 다발로 묶여서 어느 매체와 인터뷰했던 나와 나이가 비슷한 어느 청년이 있다. 내가 땀을 흘리며 운동화를 신고 걸어다니고 아령을 들어올리는 동안 그는 영어 공부를 했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원서를 번역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나는 건강도 미용도 지금은 모두 잃었다. 그 시간에 거울을 보지 말고 딴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자기비하적인 생각이 들면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집어 들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이며 일리노이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이 책의 저자 러네이 엥겔른은 15년 전 열정적 대학원생일 때부터 여학생들을 인터뷰하며 인종, 생김새를 막론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담을 발견한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심하게 말하면 자기 몸을 미워하고 있었다.

단순히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지식욕이라든가 다른 욕구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를 놀라게 한 점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여성들이 몸매가 빼어나지 않다고, 피부가 깨끗하지 않다고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패션지나 미디어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성들의 모습과 같지 않다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와 배우고 느끼고 할 것이 많은데, 몸에 셀룰라이트가 있다거나 44사이즈가 아니라고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연구 과제로 이 여성들을 선택했다. 이미지가 얼마나 여성들을 괴롭히는지,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성들의 '영혼'에 대해서 말이다. 미디어 이미지에 등장하는 여성 모습이 실은 섭식 장애를 앓아야 가능한 정도의 몸매라는 것에 대해서 이 여성들도 알고 있다. 바보가 아니니까. 현실 세계에서 늘 빅토리아 시크릿(섹시한 언더웨어 브랜드로, 톱모델들이 이 브랜드 모델이 되어 '빅토리아 시크릿 에인절'로 각광받는다)처럼 보일 수가 없다는 것은 여성들도 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여전히 저자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여성들은 섭식 장애나 포토샵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몸매를 보며 "이걸 보고 나니 밥을 못 먹겠어" 하고 말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여성을 매체에서 보면서 도저히 밥숟갈을 입에 넣을 수 없었던 경험은 나에게도 친근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뷰티 시크니스(beauty sickness)'라고 부른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가정이 뷰티 시크니스다. 아름다움은 쉽게 계량할 수 있는데, 몸무게 즉 '신체 사이즈'로 쉽게 측정이 가능하다. 일반인들은 계속 덩치가 커져 가는데 모델들은 점점 말라 간다. 그래서 미디어 이미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모델이나 배우들이야 얼굴 뜯어먹고 사는 직업이라 치더라도 일반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 사회는 여성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가장 가치가 높은 화폐라고 계속 말한다. 전통적 미의 기준을 갖추지 못한 여성은 계속해서 조롱받는다. 이런 평가를 받다 보면 여성의 내면에 스스로를 평가하는 어떤 잣대가 생겨난다.

뷰티 시크니스의 상징인 이 잣대를 부러뜨리는 것이 뷰티 시크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발자국이다.

나는 살이 찌고 난 후 내 몸을 바라보기도 싫었지만, 이제 뷰티 시크니스 문제가 아니라 내 건강을 위해 운동할 생각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실용적인 충고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핫도그처럼 크고 살찐 내 팔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을 수 있는 건강한 팔이 있다는 것. 뒤룩뒤룩 살찐 내 허벅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건강한 다리가 있다는 것. 아주 단순한 사실이지만 워낙 미디어 이미지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여성 모습이 강했기 때문에 나 역시 뷰티 시크니스를 심하게 앓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 병에서 나을 자격이 있다. 나 역시 그만 앓고, 내가 될 수 없는 여성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이제야 온 것 같다. 또한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