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중국)에서 오는 거의 모든 학생은 스파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은 세계 무역을 방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욕적(insulting)이다."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잉·존슨앤드존슨·페덱스 등 13개 기업 CEO를 초청해 저녁을 하면서 쏟아낸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내내 중국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나라 모든 유학생이 스파이'라고 말한 대목에선 나라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동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중국을 지칭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8일 전했다.

미·중 간 무역전쟁 갈등이 격화하는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유학생을 '스파이'라고 칭한 것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부터 로봇공학 등 첨단기술을 공부하는 중국인 대학원생의 비자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제한했다. 중국이 미국 내 자국 유학생들을 활용해 간첩 활동을 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미 국제교육연구소(IIE)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은 35만755명으로, 미국 내 전체 유학생의 32.5%를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대일로에 대해서도 '모욕적'이라고 대놓고 비난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 면전에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항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투자하는 펀드를 창설하고, 1억1300만달러(약 1300억원)를 착수금 성격으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공격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대일로 사업은 이미 여러 군데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사업 추진의 핵심 지역인 남아시아·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부채 문제로 일대일로 인프라 구축 사업을 잇따라 축소·중단하고 있다. 중국과 620억달러(약 69조35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일대일로 사업을 무리하게 벌인 파키스탄은 최근 외환보유액이 고갈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IMF 최대 출자국인 미국이 '돈이 중국으로 흘러갈 것'이라며 구제금융을 반대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국가 파산 위기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미얀마는 이달 초 중국과 함께 추진해온 서부 차우퓨 항만 개발 사업의 규모를 73억달러(약 8조1700억원)에서 13억달러(약 1조4500억원)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도 지난달 총 904억링깃(약 24조8200억원) 규모의 일대일로 관련 철도·송유관 건설 사업 3건을 중단했다.

이 3국의 일대일로 관련 사업 축소·중단은 전체 일대일로 구상을 실현하는 데 치명적이다. 일대일로의 핵심은 이른바 '믈라카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중국 에너지 수입의 80% 이상이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사이에 있는 믈라카 해협을 통해 이뤄지는데, 중국은 이 해협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중국은 파키스탄과 미얀마, 말레이시아에 인도양에 면한 대규모 항만을 조성하고, 이 항만에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스(喀什)와 윈난성 쿤밍(昆明)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 송유관을 건설하고자 했다. 유사시 믈라카 해협이 봉쇄되더라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생명선을 확보하자는 전략이었다. 이 구상이 출발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 측 통계로도 드러난다. 중국 상무부는 올해 상반기 일대일로 관련 55개 국가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액은 76억8000만달러(약 8조590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일대일로는 개도국들에 '독이 든 사과'와 같다. 사업 자금 대부분은 중국이 대출 형태로 제공했고, 그 자금은 시공사인 중국 업체에 대금으로 지불되는 구조였다. 가령 말레이시아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은 사업비의 85%가 중국수출입은행 대출로 조달됐고, 시공도 중국 업체가 하게 돼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일대일로 구상을 중국이 개도국에 빚을 지워 해당국을 조종하려 하는 '채무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견제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