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체제를 일컫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G7(주요 7개국) 내 갈등, 동맹국과의 무역 전쟁, 독단적인 한미 연합훈련 중단 결정 등을 두고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세워온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세계 질서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 현실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크루그먼 “트럼프 때문에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18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무한 독주로 팍스 아메리카나가 몰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G7 정상회의에서 무역 문제로 회원국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북한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들을 모욕하고 불량배 국가를 찬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역 협정을 파기하는 등 이 같은 행위는 미국의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 종언을 고하고 미국을 다른 강대국과 차별화했던 이상적인 가치들에 등을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껏 미국은 자유와 인권, 보편적인 원칙으로서의 법 질서 등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해왔다”며 “그러나 지금은 자유세계의 지도자, 경제적이나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팍스 아메리카나는 역사적으로 선량한 제국에 의해 유지돼왔으며, 강압적인 힘이 아닌 소프트 파워와 존경을 통해 세워졌다고 강조했다.
◇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은 현실…트럼프는 현실적으로 대처한 것”
일각에서는 미국 주도의 평화체제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면서도 원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정책 때문이 아니라 중국 등 새로운 권력이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이 뒤로 물러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이 같은 흐름을 미리 파악하고 이후 상황에 현실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국영언론 ‘더 내셔널(The National)’은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NAFTA)마저 위태롭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G7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과 무역 문제로 갈등을 빚었으며 자국 국방부, 한국 정부와의 상의 없이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독단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했다.
더 내셔널은 이에 대해 “국제사회의 각종 조직과 협약에서 미국이 발을 빼는 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며, 오바마 미국 행정부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인 바 있다”며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을 보다 빠르게 진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더 내셔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세계질서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기울고 있고, 중국이 떠오르고 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과정을 서둘러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는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G7은 러시아가 빠졌을 때 이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국제 조약은 때때로 불공정하기도 하며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공정하게 분담하지 않는다며 탈퇴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나토 회원들은 그들의 공정한 몫을 지불하기 시작해야 한다”며 “이와 동시에 팍스 아메리카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