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18일 "북측 초청에 따라 23~25일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우리 측 기자단 명단을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통지하려고 했으나 북측이 접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은 한국을 포함한 5개국 기자들에게 현지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한국 기자단을 배제한 것이다. 다른 나라 기자단에게 어떻게 할지는 불확실하나 북이 '풍계리'도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기선 제압 카드로 쓰려는 의도가 보인다.
북은 지난 16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판문점 선언의 근본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유감을 표하자 17일에는 '남북 대화 전면 중단'으로 협박했다. 미국에도 "일방적으로 핵포기를 강요하면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며 위협했다.
북한의 잇단 위협에도 불구하고 내달 12일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은 낮다. 김정은은 미·북 회담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입장이 아니다. 지금의 대북 제재가 이대로 1~2년만 더 유지되면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올 수 있다. 김정은이 국제사회를 속이기로 마음먹었든, 정말로 핵을 포기할 결단을 내렸든 미·북 정상회담에는 나와야 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북의 벼랑 끝 회담 전술에 대처하려면 먼저 의연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벌써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백악관에선 회담 무산 가능성에 초조해하는 듯한 표정이 읽히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서 사실상 미국을 향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주문했다. 이를 본 북은 한·미를 더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풍계리'가 나왔다. 뻔히 보이는 북한의 수(手)에 일희일비하면 북핵 폐기가 산(山)으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