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8일(현지 시각)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군사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겠다고 밝힌 뒤 1시간쯤 지난 시점이다. 미사일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남쪽 군기지 밀집지역인 키스와(Kiswah)에 쏟아졌다. 시리아 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이란의 정예 혁명방위군 소속부대의 무기고와 로켓 발사대를 타깃으로 했다. 시리아 관영 언론들은 "시리아 방공망으로 이스라엘 미사일 2기를 격추시켰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이 공격으로 9명이 숨졌다고 시리아 인권관측소는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전례대로 시리아에 대한 공격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시리아에서 '비정상적 활동'을 감지했고, 골란고원 주둔 병력에 공격 대비 태세를 명령했다고 9일 밝혔다. 이와 함께 이례적으로 골란고원 거주 민간인을 방공호에 대피시켰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 후 시리아로부터 장악해 온 지역이다. 미 국무부도 8일 이스라엘에 체류 중인 미국민에 대해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골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신중히 고려하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시리아 접경 골란 고원에 탱크 집결 - 미국이 이란 핵 협정에서 탈퇴하자마자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9일(현지 시각) “이란의 비정상적 활동 우려가 있다”며 시리아 국경의 골란 고원에 탱크를 집결시켜 전투태세를 갖춘 모습. 골란 고원은 이스라엘과 이란·시리아가 수시로 충돌하는 곳이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이 중동 화약고에 불을 지폈다. 미국과 이란의 합의 모드에 움츠러들어 있었던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反)이란 전선' 입장에서는 족쇄가 풀린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날 이란군에 대한 공격에 나선 것은 2015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핵협상을 타결한 뒤 중동 지역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있는 이란에 대한 '반격'이라는 분석이다.

이란은 2015년 서방과 핵협정을 타결하고 이듬해 경제 제재 해제로 숨통을 튼 후 시아파 동맹 정권인 시리아와 레바논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 경제 지원을 해왔다. 이슬람교 양대 종파 중 하나인 시아파의 '형님 국가' 이란은 같은 종파의 시리아 정권과 레바논의 무장 단체 겸 정치 조직인 '헤즈볼라'를 지지하며 시아파 '초승달' 동맹 연대를 구축해 왔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이란의 대(對) 시리아 지원은 2013년 36억달러(약 3조9000억원)에서 2017년 200억달러(약 21조6000억원)로 6배 가까이 늘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란의 꾸준한 정치·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지난 6일 치러진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차지하며 무력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최대 세력으로 등극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7일 TV 방송 연설에서 "이번 총선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할 수 있는 방어막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란은 또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 사태로 지난 2014~2017년 국가적 위기에 빠진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며 이라크 정부와 '혈맹'이 되면서 최근 이들과 군사 협약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탈퇴는 이란의 영향력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탈퇴 결정을 지지하고 환영한다"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주미 대사인 칼리드 빈살만 왕자는 트위터를 통해 "이란은 오바마 정부와의 핵합의로 본 제재 해제의 혜택으로 헤즈볼라를 비롯해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시아파 세력을 지원해 중동 지역의 정세를 불안정시켰다"면서 "이번 핵협정 탈퇴 결정으로 이란의 도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이란 전문가인 아리 샤비트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이란을 과거 나치(Nazi) 독일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면서 "이란에 어떤 기회를 주지 않고 강도 높은 제재로 고사(枯死)시키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