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1980~90년대 포크 가수, 아들은 한창 활동 중인 인기 아이돌. 겉으로 드러나는 두 사람 사이 격차는 남남만큼 멀다. 그러나 지난 29일 서울 대학로 소극장 예그린씨어터에서 만난 임지훈(59)과 아들 임현식(26)은 영락없는 부자(父子) 사이였다. 웃을 때 눈가에 휘는 반달,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대식가, 에릭 클랩턴과 밥 딜런을 좋아하는 음악 취향까지. "지금은 '현식이 아빠'로 더 불리지만 소싯적 나도 인기 있고 춤 좀 췄다"는 아버지와, 그 말을 들은 아이돌 그룹 '비투비' 멤버 아들은 똑같이 웃어 보였다.
임지훈은 이날 10년 만에 새로 내놓는 10번째 음반을 기념해 콘서트를 열었다. 새 앨범은 타이틀곡 '말을 못했어'를 비롯해 새 노래 9곡을 담았다. 그중 8곡이 모두 임지훈 작사·작곡이다. "너무 빨리 변한 세상에 여전히 내 감성이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임지훈의 고민이 절제된 사운드로 담겼다. 두 아들도 아버지의 귀환을 도왔다. 일본에서 스토리만화를 공부한 큰아들 윤식(28)이 아기자기한 앨범 커버를 그리고, 작은아들 현식은 경쾌한 블루스 반주가 돋보이는 곡 '크림 같은 파도'에서 아버지와 듀엣으로 노래했다. 임지훈은 "현식이가 앨범 전반에서 코러스도 해줬는데 젊을 때 제 목소리를 꼭 빼닮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 노래 '그리워하다'를 휴대폰 수신음으로 해놓고 있지만 "처음에는 가수 하는 걸 반대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 공연장에 따라다닌 두 아들 모두 "음악 하고 싶다"고 했었다. "가본 길인 만큼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는 임지훈은 "음악만은 안 된다"고 말렸었다. "다들 아버지한테 기타를 배웠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형과 나 모두 학원에서 배웠어요. 아무리 졸라도 안 가르쳐 주셨죠. 그래서 저는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 꼭 음악 조기 교육 시킬 거예요." 아들의 말이다.
큰아들은 그림으로 진로를 바꿨으나 둘째는 중2 때 갑자기 "밴드부에 들어가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취미로 하라"고 말렸더니 대뜸 중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다. "가자마자 스티비 원더 사진으로 기숙사 방을 도배하고 몰래 건반 사다가 작곡 공부를 했더라고요." 결국 아들은 고1 겨울방학 때 지금 소속사의 연습생으로 뽑혔다. "임지훈 아들인 건 비밀로 하고 혼자 힘으로 데뷔한다"는 조건으로 겨우 승낙해줬다. "그쯤 되니까 '피는 못 속인다' 싶었어요. 저도 어머니가 심하게 반대하셔서 친구 집에 기타 맡겨 놓고 강둑에서 노래 연습했거든요."
임지훈은 90년대 초반 소극장 콘서트 문화를 주도했다. 거리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열렸고 때론 객석으로 최루탄 가스가 스며들었지만 매일 무대에 섰다. 그때 별명이 '또해'였다. 아들은 훨씬 더 큰 무대에 선다. 아버지가 '꿈이어도 사랑할래요' 같은 노래에서 짙게 풀어놓은 그리움의 감성을 아들도 좇는다. "곡 쓰다 보면 아빠 음악과 닮은 감성을 발견해요. 아빠처럼 나만의 색이 담겨서 오래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날 아들은 객석에 조용히 앉아 아버지 공연을 지켜봤다. 앨범에서 아들과 불렀던 듀엣곡을 무대에서 혼자 부른 임지훈이 아들 쪽 객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이 들어도 옛 추억을 또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오래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곡을 계속 남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