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각) "항구적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했다. 사상 처음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이제 더 이상 북핵 문제를 끌 수 없는 상황이다. 정상 차원의 결단 외엔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불가피했다. 잘되면 25년을 끌어온 북핵 사태가 끝날 수 있다.
김정은이 조건만 맞으면 정말 핵을 포기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또 거대한 쇼 한 편인지는 앞으로 한두 달 안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낙관은 금물이지만 비관할 필요도 없다. 흔들릴 수 없는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다. 불완전하고, 검증할 수 없으며,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핵 폐기는 핵 폐기가 아니라 사기(詐欺)극일 뿐이다. 북은 과거에도 핵 폐기에 합의해놓고 검증을 거부한 전력이 있다.
결국 김정은이 핵 포기 대가로 내걸 조건이 무엇이냐가 관건이다. 만약 한·미 모두, 혹은 어느 한쪽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건다면 핵 포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대화한다면서 시간을 끌고 핵 무력을 완성해 한·미가 더 이상 손쓸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 조건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한미 동맹을 종료하고 주한 미군을 철수하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다. 핵은 김정은에겐 생명과도 같은 존재가 돼 있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북한 내에서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런 김정은으로서는 '한미 동맹과 북핵을 맞바꾸자'고 공을 한·미로 넘길 가능성이 실제 없지 않다. 북이 핵 폐기 조건으로 늘 주장하는 '평화협정'도 바로 한미 동맹 종료를 말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은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북 위협을 방어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있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실제 그런 역할을 해왔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바탕에 서 있다. 북핵이 실제 없어진다 해도 한미 동맹이 사라지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오히려 더 커질 우려가 있다. 우리로서는 한미 동맹과 북핵 폐기의 맞교환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조야(朝野) 역시 한미 동맹 폐기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각에선 미국이 자신들의 우선 관심사인 북 대륙간탄도탄만 포기시키고 북핵은 사실상 용인하는 거래의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 경우 대한민국은 비상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로 북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나서고 북한 체제 안전은 유엔과 한·미·북·중·러 등 동북아 관련국이 모두 참여하는 안전보장 체제로 푸는 것이다. 북이 핵만 버리면 이 세계에 북을 공격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이 경우 대북 제재 해제와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으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단기간에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김정은이 핵을 버리고 미·북 수교와 제재 해제를 얻는 것이 살길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