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공소시효(10년)가 지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수사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위법 행위가 드러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주민 서울청장은 5일 "친고죄(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 가능)나 공소시효 조항에 걸려 형사 처벌이 어려워 보이는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추행 사실이나 피해자가 드러날 수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부당한 인사상 불이익 등을 준 경우 또 다른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성폭력 행사 과정에서 상해치상 혐의가 적발되면 공소시효가 성폭력(10년)보다 긴 15년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회의실에서 정현백(오른쪽 앞) 여성가족부 장관과 이철성(왼쪽 앞) 경찰청장이 미투 운동 확산에 따른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경찰은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이전 성폭력 사건도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2010년부터는 성폭력의 상습성이 인정될 경우 피해자 고소 없이도 수사할 수 있다"며 "2010~2013년의 상습 추행에 대해서는 수사해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폭로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남자 교수진 4명이 성추문에 휩싸인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사건과 8년 전 여성 인권 활동가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모씨에 대해 내사를 시작했다. 그 밖에 8건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은 일선 경찰서와 성폭력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성폭력 피해 신고자의 '가명(假名) 조서'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피해자 신원이 노출되면서 생기는 '2차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여가부 등에 따르면 경찰은 2013년부터 성폭력 범죄 등에 한정해 가명으로 피해자 진술 조서와 참고인 조서 등을 작성할 수 있다. 이 조서의 당사자 실명과 주소, 연락처, 주민등록번호, 직업 등 신상 정보를 기록한 신원관리카드는 따로 금고에 보관한다. 담당 형사만 열람할 수 있도록 보안을 강화해 피의자나 제3자에게 피해자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취지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성폭력 피해자의 약 20%가 수사 단계에서 가명을 쓰고 있다"면서 "특히 유명인이 피해자인 경우 언론에 유출돼 2차 피해 우려가 크기 때문에 가명을 권장하는 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