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민자를 제한하는 강력한 이민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민자 가정 출신의 학자가 세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 차기 총장으로 11일(현지 시각) 선임됐다. 하버드대는 로렌스 S. 바카우(Bacow·66)를 제29대 총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바카우는 드루 길핀 파우스트(70) 현 총장에 이어 오는 7월 1일 임기를 시작한다.

바카우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마쳤다.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후 MIT에서 24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장까지 지냈다. 2001년 9월~2011년 7월에는 미 매사추세츠주의 터프츠대에서 총장을 지냈다. 최근까지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아 왔다.

후보선정을 추진해온 하버드 재단의 윌리엄 리 이사장은 “고등교육과 대학연구가 위기를 겪는 시점에 기술적인 리더십과 전략적 사고, 절제된 실행력이 요구된다”며 “이런 가치를 지켜내는 데 바카우 지명자가 적임”라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로렌스 S. 바카우 신임 하버드대 총장은 오는 7월 제29대 총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바카우는 트럼프의 강력한 이민 규제에 맞설 수 있는 성공적인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바카우는 동유럽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아버지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야간 대학과 일을 병행하는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19세 때 미국에 홀로 이민왔다. WP는 “바카우는 미국의 고등교육이 이민 가정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했다.

그는 2010년 보스턴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드림 액트(Dream Act·미국 이민개혁 법안의 일환으로 청소년 불법 체류자를 구제하는 법) 법안에 대해 강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재능있는 젊은 학생들이 이민법의 문제로 이 나라에서 지낼 수 없는 것을 지켜봤다”며 “그들이 미국 시민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할뿐 아니라,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카우가 제도 운영과 조직관리 능력 면에서 인정받았다고 분석했다. NYT는 “바카우는 ‘학자’보다는 ‘관리자’ 혹은 ‘수장’에 가까운 인물”이라며 “윌리엄 리 이사장의 말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거대 기부금에 의존하는 명문 사립대에 적대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에 대항할 만한 리더가 필요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학생 장학금으로 쓰이는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이 줄어들면서 하버드대는 매년 4300만달러(약 466억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형편이다.

드루 길핀 파우스트 현 하버드대 총장(왼쪽)이 2018년 2월 11일(현지 시각) 차기 총장으로 지명된 로렌스 바카우 전 터프츠대 총장을 끌어안고 있다.

하버드대 첫 여성총장으로 11년간 재직한 드루 길핀 파우스트 현 총장은 6월 말 퇴임할 예정이다. 바카우 신임 총장은 이날 성명에서 “하버드대 같은 훌륭한 기관을 이끄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겸손히 받아들이겠다”면서 “십여 년 전 만난 파우스트 현 하버드대 총장과 친구이자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는 지난해 6월 파우스트 총장이 퇴임 의사를 밝힌 이후 총장후보 선정위원회를 꾸리고 700여명에 달하는 후보를 대상으로 적임자를 물색해 왔다. 그동안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비롯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재닛 옐런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등 유력인사 들이 총장 후보로 거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