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의 인생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겠다.' 부모가 자식을 스포츠 스타로 키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올인'한다고 해도 자식 마음이 그게 아니면 말짱 헛일이다. 대신 이런 게 있다. 부모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꽂히면 끝장을 보는 것이다.

그런 선수들이 이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쏟아져 나온다. 챔피언을 꿈꾸는 10대들이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10대의 반란'에 도전하는 한국 선수는 23명에 달한다. 소치 대회 때 10대는 9명이었다.

"쌤."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 황대헌(19)은 감독, 코치를 이렇게 부른다. 예전 같았으면 '빠따'를 면치 못했을 일이다. 황대헌은 5세 때 스케이트에 꽂혔다. 엄마의 권유로 미술과 피아노도 배워봤지만 가슴 떨리게 한 건 스케이트였다. 황대헌은 ISU(국제빙상연맹)가 쇼트트랙을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재미있어서"라고 답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꿈'을 그려 오라는 숙제에 '나의 꿈 :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이라고 썼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을 병행했던 황대헌이 쇼트트랙을 최종 선택한 이유도 간단했다. "역전이 재미나니까. 스릴 있잖아요." 그렇다고 운동에만 매달리지도 않는다. 황대헌은 "짬이 나면 친구들과 PC방 가서 게임해요. (다른 친구들과) 똑같아요"라고 했다.

전형적인 10대의 모습이지만 황대헌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소치 대회 때 노메달 굴욕을 당한 남자 쇼트트랙의 명예 회복을 해줄 에이스로 꼽힌다. 미국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황대헌이 1500m와 계주에서 모두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그는 이번 시즌 월드컵 랭킹에서 1500m 1위, 1000m 2위, 500m 4위에 올라 있다. 1000m 세계 기록도 갖고 있다. "주변의 기대가 크다"고 하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뭐,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자 쇼트트랙에선 김예진(19)·이유빈(17)이 언니들과 함께 여자 계주 3000m 금메달을 노린다. 지난 2014 소치 대회에선 고교 2학년이었던 심석희(21)가 메달 3개(금 1, 은 1, 동 1)를 목에 걸었다. 6일은 김예진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지만 그는 선수촌에 들어온 이후 대표팀과 함께 첫 훈련을 소화했다. "평생 한 번뿐인 고등학교 졸업식인데 아쉽지 않으냐"는 물음에 "졸업식보다 올림픽이 더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쇼트트랙 대표팀 김선태 감독은 "어린 친구들이 올림픽이라고 주눅들기는커녕 오히려 선배들을 쫀다(닦달한다는 의미)"면서 웃었다. 김예진과 이유빈은 "(세계 최강인 심석희·최민정 등) 선배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겠다"며 방에서도 훈련하는 독종들이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선 이승훈(30)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김민석(19)과 정재원(17)이 출격한다. 빙상계 관계자는 "10대 빙상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체육회, 연맹 등의 지원 아래 유스올림픽,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며 "큰 대회임에도 이전 세대와 달리 유쾌하게 도전하는 건 시스템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0대 챔피언의 탄생을 기다리는 건 한국뿐 아니다. 러시아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8)와 신예 알리나 자기토바(15) 중 한 명이 금메달을 목에 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네이선 첸(19),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클로이 김(18)도 챔피언을 노린다. 일본에선 2014 소치 대회에서 만 15세74일의 나이로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 은메달을 따낸 히라노 아유무(19)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 바로잡습니다

▲7일 자 A24면 '꽂히면, 눈빛 달라진다… 10대들의 겁없는 질주' 기사와 그래픽에서 김민석, 정재원, 네이선 첸의 나이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김민석은 19세, 정재원 17세, 첸은 19세가 옳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