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는 만화가 아니라 경전(經典)이고 교육학 교재다."
농구 만화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슬램덩크교(敎) 신도 23명이 쓴 책이 나온다. 이름하여 '슬램덩크 인생 특강'. 기획을 주도한 컨설팅 회사 대표 서대웅(43)씨는 "10년 전 심한 우울증을 겪은 뒤부터 습관적으로 펼친 '슬램덩크'가 큰 위로가 됐고 그 힘을 나누고자 했다"고 말했다. 만화 완결 20주년인 2016년 원작자를 만나겠다며 일본 원정대를 꾸리고, 지난해 생방송 유튜브 토크쇼도 열었다. 이들은 22일 인터넷 방송 '슬램덩크 포에버'를 시작하고, 4월에 기부 농구 대회와 강연회도 열 계획이다.
◇슬램덩크의 '사회학'
만화는 비(非)명문 북산고교 농구부에 모인 사연 있는 미생들의 분투기.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 신재광(41)씨는 매년 신입 사원 교육에서 '슬램덩크' 캐릭터를 통해 '관계 맺기'를 설파하고 있다. "누구나 돋보이고 싶어 하지만 조력 없이 성공하기 어렵고 조력의 특징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엄격한 리더 채치수와 그 옆의 부드러운 식스맨 권준호 등의 관계를 설명하면 고루해하지 않고 단박에 이해한다"고 말했다.
북산고교가 전국 대회 2차전에서 고교 최강 산왕공고를 잡는 이변이 벌어졌을 때 초짜 강백호가 던진 회심의 역전슛은 덩크슛이 아닌 소박한 점프슛이었다. 마케팅 회사를 이끄는 황부영(54)씨는 여기서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정신, 곧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에 대한 은유를 발견한다. "수만 번 연습으로 다져진 점프슛이 역전골로 그려진 이유를 깨닫는 순간, '내 영광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던 강백호의 유명한 대사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의 반복임을 깨닫는다."
◇누구를 닮을 것인가
필자들은 간판급 캐릭터가 아닌 주변 인물을 주목한다. 미국 변호사 정웅섭(43)씨는 "미국 위스콘신대학 로스쿨에서 유학할 당시 학업을 못 따라가 우울할 때 스승으로 삼은 인물이 해남고교 가드 신준섭"이라고 고백한다. 괴물 같은 신체 능력도 천재성도 없는 선수. "특정 포지션을 고집하지 않고, 깨끗한 슛폼을 갈고 닦고, 매일 500번 슈팅 연습을 했다. 감독조차 기대를 안 한 선수가 1년 만에 평균 득점 30점의 주포가 됐다."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 대표 오세정(38)씨는 능남고교 주장 변덕규를 주목한다. 탁월하진 않지만 '이런 건 내게 맡겨라!' 같은 대사를 하는 인물. "다른 팀장과 붙으면 항상 지고, 진급하기는 힘들겠지만, 부하에게 재량을 주고 방패가 돼주는 신뢰받는 팀장"이라는 분석이다.
◇독자가 뽑은 최고 대사
스피치 강사 이명신(38)씨에 따르면 '슬램덩크'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화법'으로 점철돼 있다. 필자들이 꼽은 최고 멘토는 능남고교 유명호 감독. "끝까지 뛰어라. 천천히라도 좋아. 네 힘으로 끝까지 하는 거다." 덩치만 크다고 자조하는 제자에게 "네 키는 정말 멋진 재능"이라고 말해주는 어른이다. "패인은 바로 나다. 선수들은 최고의 플레이를 했다." 이 대사는 연재 20주년을 맞아 일본 독자들이 꼽은 '최고의 대사' 3위에 올랐다. 북산고교 안한수 감독은 예견하는 대신 전망을 제시하는 화법을 쓴다. "승부에 '절대'라는 말은 없다." "나뿐인가,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여자 프로농구팀 감독 이환우(46)씨는 "안 감독은 만화 캐릭터를 넘어 닮고 싶은 인물이자 목표"라고 평했다. 만화가 만화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