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개띠 해가 왔다. 사람은 두 다리로 걷고 개는 네 다리로 걷는다. 특히 눈이 내리면 개들은 신이 나 사방으로 뛰논다. 언젠가 숫눈 덮인 산자락 솔숲에 간 적이 있다. 꽝꽝 언 연못가 숫눈을 먼저 밟은 건 내가 아니고 개였다. 개 발자국이 지천이었다. 그 발자국을 보고 있자니 눈밭에 꽃밭을 꾸려놓은 듯싶었다. 동글동글한 발자국이 국화꽃 같고 금잔화 같고 백일홍 같다. 눈밭에 꽃밭을 가꾼 것은 개의 발흥(發興)이다.

어릴 적 동네 개가 진흙 발로 대청마루를 훑고 지나갔을 때도 그랬다. 할머니는 지청구를 쏟아냈지만 개 발자국이 마르니 나름 그림이었다. 윤이 도는 암갈색 마룻바닥에 연갈색 개 발자국이 한바탕 난장의 그림을 이뤘다. 꾸중 들은 개는 눈치 보다가 눈을 찡긋거리는 꽤 유순한 놈이었다. 그 녀석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벌써 수십년 전 얘기다.

그보다 더 오래된 개는 화인(畵人)의 그림 속에 여전히 짖고 달리는 품세가 시르죽지 않았다. 남리 김두량(1696~ 1763)은 도화서 화원으로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 덕에 친히 김두량의 삽살개 그림에 화제(畵題)를 써줬다. 내용인즉 '사립문에서 밤을 지키는/ 그게 네가 맡은 소임이거들/ 어찌 길 위에서/ 어찌 이리 짖어대는고'라고 겉으론 꾸중 놓는 듯하나 삽살개의 명랑함을 에둘러 칭찬한다.

이 영민한 삽살개는 주인에게 충직하고 아이들에게 더없이 살갑다. 더구나 불길한 기운과 잡귀를 물리치는 영험함까지 있다 한다. 그림 속 활달하고 섬세한 붓놀림은 낮에 나온 귀신마저 질겁해 달아날 만한 담대함이 있다. 두려움 모르는 눈빛과 바람을 타듯 산발하는 몸의 터럭은 생기발랄 그 자체다. 특히 둥글게 말려 올라간 꼬리는 허공에 똬리를 얹은 듯하다. 튼실한 다리와 그 다리를 듬쑥하게 받침한 발과 발톱은 당장 잡귀를 물리칠 듯하다.

사람의 탈을 쓰고 무뢰한(無賴漢)이 되느니, 저 명랑하고 씩씩한 삽사리로 한 몇년 사는 것도 괜찮겠다. 그림을 보면 녀석을 데리고 들판을 달리고도 싶고 겨울 눈밭에 쓰러진 노인을 업혀 동네 의원으로 데려가고도 싶다. 그러다 바위 곁에 서로 기대앉아 맑은 볕에 졸고도 싶다. 두고 보면 영원히 다감하게 곁을 지키는 지인인가도 싶다.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어려서부터 개를 기르고 싶어하던 딸이 요즘엔 철이 들었는지 개 기르자는 말을 안 한다. 그럴 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있으니, 이 삽살개다. 이 녀석을 어찌 해봐라, 방벽에 붙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