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오른쪽·조정석)가 승민(이제훈)에게 담배를 가르치고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배우 조정석)는 승민(배우 이제훈)에게 담배를 가르친다. 라이터로 불붙여 주며 "연기를 빨아! 삼켜 꿀떡"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인다.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배우 김혜수)은 도박 장면 곳곳에서 얇고 긴 담배를 태운다. 영화 '신세계' 속 인물 이중구(배우 박성웅)는 자신을 찾아온 조폭 앞에서 말한다. "갈 땐 가더라도 담배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3일 유현재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 연구팀의 '영화 속 흡연·음주 장면 규제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10년 새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영화 흥행작 속 흡연 노출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2006~2015년 매해 흥행 순위 10위 안에 들었던 영화 96편(4편은 중복)에서 흡연 장면은 총 618회 등장했고, 이 가운데 '12세 이상'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골라 집계한 흡연 노출 횟수(보정한 수치)는 2006년 42회에서 2011년 34회까지 줄었다가 2015년엔 64회로 증가했다.

영화 속 흡연 장면은 기존 흡연자의 흡연 욕구를 끓어오르게 하는 것은 물론 청소년들의 흡연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문제가 있다고 유 교수는 말했다. 실제로 연구팀이 연령층이 10대·20대인 530명(남성 264명, 여성 26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영화를 자주 본다'는 응답자일수록 '흡연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설문에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영화 속에서 '뻐금' 소리 등 담배 피우는 음향이 같이 나오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구팀 조사에서 최근 10년 흥행작(상위 10편) 중 가장 많이 담배를 피운 배우는 이정재(총 16회 노출)였고, 이어 오달수, 송강호, 정준호·김윤석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범죄 영화에선 유명 배우가 주연으로 연기하며 담배 피울 때 관람객의 감정이입이 높아지고 흡연 욕구가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지상파 TV에선 흡연 장면을 가리고 있지만, 영화는 '흡연 자유구역'으로 통한다. 반면 세계 주요국에선 이미 영화 속 흡연 제한이 진행 중이다. 미국은 2011년 흡연 장면이 얼마나 포함됐는지에 따라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R등급'으로 조정토록 했다. 중국에선 흡연 장면이 많이 포함된 영화는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2006년 시행했다. 인도는 2012년 영화 및 TV 프로그램을 만들 때 흡연 장면이나 담배 제품의 직·간접 광고를 금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수백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영화를 보고 흡연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도록 규제하라"고 각국 정부에 촉구했다. 유 교수는 "특히 청소년 관람가 영화는 흡연 장면 노출을 규제하거나, 최소한 흡연을 미화할 수 없도록 규제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