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서울식물원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김모(44)씨가 추락해 사망했다. 김씨는 높이 3m의 구조물 위에서 몸과 구조물을 연결하는 안전 고리를 걸지 않고 작업 중이었다. 경찰은 공사 관리자의 안전관리 소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건설 현장 사망자는 2014년 366명, 2015년 493명, 2016년 554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겨울로 들어서는 공사 현장에선 기온이 떨어지고 신체 활동이 둔해지면서 추락과 협착(狹窄·신체 일부가 기기에 끼이거나 물림) 등 안전사고가 잇따른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공사를 마무리하려다 예기치 못한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안전 고리만 있었어도 살았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공사장에는 길이 5m가 넘는 목재가 높이 쌓여 있었다. 상당히 경사진 곳이라 목재 더미가 무너져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다분했다. 쇠창살처럼 솟은 철근 사이를 오가는 근로자 10여 명 중에는 안전모를 쓰지 않은 이들이 절반 정도였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근로자는 공사 현장에서 반드시 안전모를 써야 한다. 감독을 나온 서울시 안전총괄과 주무관이 "서울시에서 나왔습니다!"라고 소리를 치자 근로자들은 허둥지둥 안전모를 찾아 썼다. 구석을 보니 소화기가 녹이 슬어 검붉게 변해 있었다. 감독관이 "20년도 더 된 것 같다"고 하자 현장 소장은 "새것이 있다"며 부랴부랴 다른 것을 가져왔다. 이날 서울시 감독관은 안전모 미착용과 불량 소화기 등 4건의 위반 사항을 적발해 시정을 권고했다.

원칙이 무시당해… -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원각사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공사장 내에 안전모 착용은 필수다. 이날 서울시는 원각사 공사 현장을 찾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불시 안전 점검을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안전모를 안 쓴 이들은 대부분 일용직"이라며 "안전모를 지급해줘도 내일 안 나올지도 모른다며 챙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추락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 고리를 착용한 근로자도 거의 없었다. 안전 고리는 X자 모양의 띠로 허리와 상체를 감싸고 고리를 철골 구조물에 연결한다. 또 다른 근로자는 "안전띠가 헐렁해서 일하다 보면 자꾸 꼬여 거추장스럽다"며 "1m 구간마다 몇 분만 작업하고 다시 이동하는데 누가 번거롭게 매번 고리를 새로 걸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시내 건설 공사장에선 4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안전 고리를 걸지 않고 작업을 하다 생긴 사고가 32건으로 사고 유형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일부 근로자는 안전 고리를 착용하면 움직이기에 불편하고 작업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로 착용하기를 꺼린다. 공사 현장의 관리나 감독이 부실한 경우도 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부주의나 부실을 근절하기 위해 '안전모·안전 고리 파파라치' 제도를 지난 21일 도입했다. 시민이 안전모·안전 고리를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 사진을 찍어서 현장 주소와 위반 내용을 제출하면 5만원 상품권을 지급한다.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기본적인 안전 수칙만 준수해도 큰 사고는 줄일 수 있다"면서 "현장 근로자뿐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관심이 동반돼야 가능하다"고 했다.

◇규정은 선진국 수준, 지키는 현장이 없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안전 수칙을 어길 경우 시공사와 근로자에게 작업 중지 처분이나 과태료를 부과한다. 문제는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무단횡단을 발견했다고 경찰이 일일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법대로 단속하면 건설 현장이 거의 돌아가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안전학회장을 맡은 하동명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규정은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이를 지키려는 의식이 부족하다"면서 "불시 점검을 나가서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현장이 보일 경우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하도급업체와 시공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발주자의 안전 관리 책임을 법에 명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 관계자는 "현행법은 주로 시공사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짧은 공사 기간과 부족한 예산으로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최고 결정권자인 발주자의 안전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단계별 의무사항을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