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어 이 편지를 써봅니다."(루터) "저 또한 용기 내어 편지를 써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와 현재 천주교 교황 프란치스코(81). 최근 발간된 '루터가 프란치스코에게'(분도출판사)는 두 사람이 500년의 시차(時差)를 넘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상황을 가정한 책이다. 독일의 사제이자 저술가인 헤르만-요제프 프리슈는 500년 전 종교개혁의 주요 주제를 망라해 두 사람이 대화하는 가상의 상황을 만들었다.
편지는 전체 46통. '객관적 조건'은 교황이 유리하다. 500년 전 루터가 냈던 '시험문제'는 이미 다 노출돼 있기 때문에 답도 쉽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각각 펴낸 저술을 바탕으로 구성한 '가상 편지'는 종교에 관한 한 개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어야 하는 까닭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가령, 루터가 주장한 '오직 은총, 그리스도, 성경, 믿음'에 대해 교황은 모두 동의한다. 그러고는 '오직 믿음, 사랑, 희망' 등 새로운 3가지 덕목을 제안한다. 면죄부(면벌부) 판매의 경제적 원인이었던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에 대해 루터는 "행위가 믿음에서 자라야지, 행위에서 믿음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교황은 "너무 거대하고 너무 화려하다. 그 모든 장엄한 것들이 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교황궁을 마다하고 손님들 거처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교황의 입장을 대변한 말이다.
'가상 편지'에는 논쟁적 요소도 많다. 미사(예배)에서 예수 최후의 만찬을 상징하는 밀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례, 평신도와 사제의 관계, 교황직에 대한 교리적 차이 등이 그렇다. 또한 루터가 튀르크인과 유대인에게 적대적인 저술을 남긴 부분을 교황이 공박하고 루터가 '방어'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결론은 같다. "대화는 우리를 풍요롭게 합니다." 책은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이 사실은 '소통 부재'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