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재판' 하면 스페인을 떠올리지만, 영국의 역사도 만만찮다. 그중 매슈 홉킨스라고 악명을 떨친 인물이 있다. 스스로를 '마녀사냥 장군'이라고 부른 그는 수많은 이들을 마녀라는 이름하에 단죄했다. 그가 2년간 교수형에 처한 사람이 16세기 전체의 희생자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의 마녀 판별법은 다양했는데, 그중의 하나로 송곳이 있었다. 악마와 계약한 마녀는 몸에 점이 있고, 그 부분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으며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매슈 홉킨스가 마녀로 판정한 사람들은 송곳에 찔려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찌된 걸까. 여기엔 조작이 있었다. 송곳 안쪽에 용수철을 달아, 찌르면 안쪽으로 날이 들어가도록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이렇다는 건, 그 자신이 마녀로 믿고서 사냥한 게 아니라 가짜 마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용의자에게 마녀 판정을 무마해주겠다며 뒷돈을 받아 챙긴 걸 보면 더 분명하다. 광란의 마녀사냥 이면에는 이욕을 좇는 자들이 있었고, 군중은 그들의 배를 채우는 데 놀아난 셈이다.
현대에도, 한국에도, 매슈 홉킨스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다. 따르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사냥당하는 사람의 폭은 더 넓어진 것 같다. 공인, 사인을 막론하고 대상이 된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다수 편에 서서 돌 던지는 일이다. 재밌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재수 없으면 자신이 돌 맞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이 법이다. 누명을 쓰고 세상 모두가 비난해도 법만은 진실을 밝혀주겠지. 그런데 정말 무서운 일은 법마저 여론을 따라갈 때 일어난다. 추적자를 피해 도망쳐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마저 음산하게 씩 웃고 있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돼 버린다. 요즘 좌우를 막론하고 법원더러 여론을 따르라고 압박하는데, 우려스럽다. 명분은 늘 정의다. 법치를 버리고 정의를 따르라는 요구는 끌리지만, 위험한 일이다. 매슈 홉킨스도 당대의 정의를 내걸고 활동했다. 주장이 매력적이라고 해서 진실은 아니다. 짜릿한 정의 못지않게 심심한 법치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