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밤 페루에서 열린 '미스 페루' 미인 선발대회 무대.
금속 조각들이 반짝거리는 미니 드레스를 입고 각 지역의 대표 미인들이 무대 중앙으로 한 명씩 나와서 자신의 이름과 출신 지역, 그리고 자신의 '치수'를 소개했다. 아직도 남미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미인대회에선 참가 여성의 가슴·허리·엉덩이 사이즈 등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제 이름은 카미야 카니코바입니다. 리마 대표이고요. 제 수치는…"
하지만, 이날 첫번째로 자신을 소개한 카미야가 공개한 '치수(measurements)'는 자신의 8등신 신체 수치가 아니었다.. "제 수치는 2202명입니다. 페루에서 지난 9년간 살해된 여성의 수입니다."
그 다음으로 마이크 앞에 선 미인 로미나 로잔나도 마찬가지였다. "제 수치는 3114명입니다. 2014년까지 인신매매로 희생된 여성의 수입니다." "내 수치는 70%입니다. 길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해본 여성의 비율입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미인들은 이날 무대에서 한 사람씩 폭력에 노출된 여성, 강간당한 여성, 성적(性的) 학대를 당하는 소녀 수 등 자신의 '수치'를 하나씩 밝혔다. '미스 페루' 무대를 찾았던 관객들 사이에선 깊은 침묵이 흘렀다.
페루에서는 작년 한 해에만 6000명이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이날 미인들이 밝힌 '수치'는 주최 측이 사전에 여성을 겨냥한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이벤트였다.
이날 미인 대회에선 물론 수영복 심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수영복을 입고 선 무대의 배경에는 2012년 전(前) 남자친구에게 납치돼 잔인하게 살해된 모델의 사진이 걸렸다. 그래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고발하면서, ‘성(性)을 ‘상품화’한다는 비난도 있는 수영복 심사를 함께 진행하는 것은 좀 안 어울리는 것 아닐까.
이날 대회를 주관한 제시카 뉴튼의 설명은 이랬다.
"여성은 자신이 원하면 벗고 다닐 수도 있어요. 나체로 말이죠. 그건 그의 사적인 결정이에요. 그러나 내가 수영복을 입고 무대에 섰다고 해서, 이브닝 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점잖지 못하다는 애기가 아닙니다. 여성에 대한 범죄에 침묵하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공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