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 노래를 연주하는 프랑스 5인조 밴드 ‘배씨방’은 각자 다른 밴드의 멤버였지만 그의 노래에 매료돼 한데 모였다. 왼쪽부터 로익 레사르(기타), 에티안느 드라 사예트(색소폰), 프랑수아 셰스넬(피아노), 스테파노 루치니(드럼), 빅토르 미쇼(프랑스혼).

지난달 24일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2017 KF 청계천 음악축제' 무대에 5인조 프랑스 밴드가 올랐다. 밴드 이름은 '배씨방(Baeshibang)'. 이들이 재즈로 편곡해 연주한 곡은 모두 1960년대 한국 가수 배호의 노래들이었다. '임의 목소리' '황포돛대' 같은 곡에 이어 남인수 노래 '이별의 부산 정거장'도 연주했다. '배씨방'은 배호의 성 '배씨'와 노래방의 '방'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배호의 노래가 있는 곳' '배호의 자리'라는 뜻이에요. 그만큼 우리가 배호 노래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리더 격인 색소폰 주자 에티안느 드라 사예트(42)가 말했다. 그는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을 모아 '배씨방'을 결성했다. 빅토르 미쇼(프랑스혼), 스테파노 루치니(드럼), 프랑수아 셰스넬(피아노), 로익 레사르(기타)가 나머지 멤버다. 작년 5월엔 배호 노래 10곡을 자신들 스타일로 편곡해 녹음한 앨범을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발매했다. 에티안느는 "우리는 각각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배호 음악을 듣고 마음이 끌려 만든 밴드"라며 "1960년대 한국 음악의 멜로디와 구성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배씨방 결성 이후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배호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지난 2010년 한국인인 아내와 함께 우리나라에 왔을 때였다. 한 한국인 친구가 들어보라며 한국 음악 CD 여러 장을 선물했고, 그중 하나가 배호 앨범이었다. 에티안느는 "30대인 아내도 배호를 잘 모른다고 했다"며 "배호가 활동한 1960년대는 비틀즈의 전성기이자 전 세계 음악의 부흥기"라고 했다. 처음 그가 배호 노래를 연주하겠다고 할 때 말린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인 친구들이었다. 그는 "K팝이 인기를 끌지만 그건 10대 아이들을 위한 노래이자 유행일 뿐이지 어른들을 위한 진짜 음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호를 본격 연구하기 시작했으나 정작 배호 노래를 찾기가 어려웠다.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기 어려웠고 몇몇 곡은 제목과 가사만 남아있을 뿐 멜로디와 박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유럽에선 50~70년대 음악을 재해석하는 젊은 뮤지션이 많다"며 "한국에선 K팝만 인기 있을 뿐 옛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청계천 음악축제에서 배씨방은 무대에 올라 배호의 ‘임의 목소리’ 등 10곡을 편곡해 연주했다.

배호 음반을 모두 구하는 데 여러 달이 걸렸다. 그 뒤로는 집에서나 연습실에서나 배호 노래만 들었다. "몇 년 전 가족과 부산에 갔는데 택시 안에서 배호 노래가 나왔어요. 그때 세 살이었던 아들이 '아빠, 아빠! 배호, 배호!'했더니 머리 희끗한 택시기사가 '어떻게 꼬마가 배호를 아느냐'고 묻더라고요. 아이가 배호 노래를 집에서 수천 번이나 반복해 듣다 보니 노래를 외운 거죠."

배씨방이 가장 자주 연주하는 배호 곡은 '임의 목소리'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공원' 같은 노래가 인기 있다"고 하자 에티안느는 "어떤 곡이 한국에서 인기 있었는지 전혀 몰랐지만 인기 곡을 다시 편곡해 연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아름다운 곡을 또 다른 방식으로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씨방 멤버들은 배호 베스트 앨범을 프랑스에서 재발매하려 했으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패했다. 곡마다 저작권자가 다를 뿐 아니라 저작권자 중 이메일로 연락하거나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배씨방이 작년에 발표한 앨범 역시 한국에서 구할 수 없다. 역시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티안느는 "배호 음악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음악을 프랑스에 알리고, 그 음악을 프랑스 감성으로 재해석한 것을 다시 한국에 알리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에티안느는 "배호의 나라에서 배호 노래로 공연한 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의미"라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배호 팬이 많아 기뻤다"고 했다. 배씨방 공연에는 배호 팬클럽 50여 명이 단체로 와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멤버들에게 꽃다발도 안겨줬다. 배호 무대의상을 재현해 입고 온 팬도 있었다. 홍대 앞 클럽 '스트레인지 프룻' 공연 때는 지방에서 온 20~30대 관객들도 있었다. 에티안느는 "배씨방이 한국에서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