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중북부의 추크(Zug)는 인구 12만명의 칸톤(주 정부)이다. 면적(239㎢)은 경기도 고양시(268㎢)보다 작다. 스위스 26개 칸톤 중에서도 최소다. 하지만 이곳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국가 평균의 2배 정도인 15만 스위스프랑(약 1억7100만원)이다. 세계적으로 부유한 나라인 스위스에서도 가장 잘사는 지역으로 꼽힌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추크는 가난한 농촌이었다. 우유와 면 가공이 주된 수입원이었다. 입법권을 가진 추크 주 정부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법 개정을 단행했다. 우대 기업에 8.6~9.6%, 일반 기업엔 14.6%의 법인세율을 적용했다. 스위스의 평균 법인세율(17.9%)은 다른 나라보다 낮은 편인데, 추크는 이를 더 낮춘 것이다.

낮은 세율에 매력을 느낀 세계적 기업들이 추크로 본사나 지사를 이전했다. 미국 제약그룹 존슨앤드존슨, 독일 전자제품사 지멘스,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 등이 옮겨왔다. 1975년에 3900개(3만5000명 고용)였던 기업 숫자가 2010년 이후 3만1000개(8만3000명 고용)로 늘었다.

스위스 26개 칸톤(주 정부)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추크(Zug)는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스위스에서도 가장 잘사는 지역으로 거듭났다. 지방정부가 자체적인 입법권을 가진다는 점을 이용해 법인세율 혜택을 만들고 규제를 없애 세계적 기업들을 유치했다. 사진은 지역 명소인 추크 호수 인근 모습.

추크는 최근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기업의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금융 서비스 승인 과정을 대폭 단축해 관련 기술 업체의 70%가 추크에 둥지를 틀었다. 스위스가 국가 경쟁력 1위인 것은 추크처럼 지방정부가 경제를 주도해 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선진국에선 지방정부가 법률을 직접 제정하고 지역 경제 발전에 앞장서는 경우가 많다. 세율이나 법적 규제 완화, 교육과 문화정책 등을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1980년대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지방분권 체제를 정비한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앙정부 주도로 항공이나 철도 등 기간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하지만 도시 경쟁력이 다른 유럽 국가에 밀리면서 중앙정부 주도 성장의 한계를 절감했다. 1982년 사회당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지방분권 체제 전환에 시동을 걸었다. 2002년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프랑스 개정 헌법 제1조는 "프랑스는 단일 공화국으로서, 그 조직이 지방분권화된다"고 규정한다.

일본은 지자체 구조가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한국의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격인 도도부현(都道府縣·47곳)과 시정촌(市町村·1741곳, 2016년 3월 현재)으로 이뤄졌다. 지자체의 재정이나 행정의 비중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은 국세 대 지방세의 비율이 8대2 수준인데 일본은 6대4 정도다. 최근 지방분권 개헌에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의 지자체들도 국세 대 지방세 비율 6대4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은 중앙정부에서 지자체에 사무를 위임한다. 일본의 지자체는 업무를 나누고, 보완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기초지자체인 시정촌에서 할 수 없는 사무를 광역지자체인 도도부현이 담당한다. 중앙정부는 도도부현이 맡기에 적절하지 않은 외교, 사법, 안보를 책임진다. 임성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선진국들은 대부분 지방분권으로 가고 있다. 그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며 "우리도 각 지역의 잠재력을 최대한 살리는 분권형 구조로 가야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