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 중인 미국인 친구가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포항 근처 바닷가 방파제 경고문이라는데, '추락주의'를 'Crashed caution', '낚시 금지'를 'Fishing ban'이라고 적어놓았다. 'Crashed caution'은 말이 안 되는 표현이지만 굳이 번역하자면 '추락한 주의'다. 'Fall Hazard! Watch Your Step!'(추락 위험! 조심해서 걸으세요)이라 써야 한다. 낚시 금지는 'No Fishing' 또는 'Fishing Prohibited'가 적절하다.
필자는 한국 도처에 나붙은 엉터리 영어 표현을 1980년대부터 지적했다. 문화부가 미국인 영어 전공자와 영어 잘하는 내국인으로 '영어 감수반'을 조직해 영어로 제작되는 모든 문서와 안내문 등을 맡기라고 권고했지만 수많은 문화부 장관 중 누구 하나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도 전국에는 엉터리 영어가 산재해 있다. 한강에 띄운 인공 섬 세빛섬을 'Some Sevit'이라고 써놓은 것이 그 전형적인 예다. 세빛섬이란 명칭으로 미루어보아 '화려한 빛으로 장식한 3개의 인공 섬' 같은데, 그렇다면 'Sebitsom(Three Colorful Islets)'이라고 써야 외국인이 알아볼 것이다. 서울의 브랜드를 'I. Seoul U.'라 지은 서울시청다운 짓이다.
2010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든 한국사 영문판 'The History of Korea'에는 틀렸거나 유치한 영문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 책이 해외 공관에 배포되기 직전 필자의 눈에 띄어 나라 망신은 막았다. 2011년엔 외교통상부가 만든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문 번역에 오역이 많았고, '2010~2012 Visit Korea Year'라고 써 붙인 간판 앞에서 당시 문화부 장관, 대통령 부인이 한국 관광의 해를 선포하기도 했다. 3년간이면 'years'라고 복수로 써야 했다. 제발 부탁인데 새 정부의 새 문화부 장관은 꼭 영어 감수반을 만들어 국격을 좀 높여주기 바란다.(※지난 회에서 예로 든 폭탄 Taurus는 독일제라 하므로 '토러스'가 아니라 독일식 발음인 '타우루스'가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