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박규현(26)씨의 좌우명은 'Keep Calm And Carry On(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이다. 소셜미디어 자기소개란에 이 글귀가 적힌 포스터를 올렸고, 방에도 문구가 들어간 매트를 깔았다. 박씨는 "학점, 취업 걱정으로 뒤숭숭할 때 이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며 "단순하지만 세련되고, 의미가 바로 와 닿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2차대전 당시 영국이 사용했던 선전 문구가 21세기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원래 이 문구는 독일군이 영국 본토를 폭격한 1939년, 영국 정부가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 종전과 함께 잊혔다가 2000년 영국의 한 서점이 홍보에 사용하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까지 퍼졌다.
젊은이들은 이 문구에서 위로를 받는다. 취업, 결혼, 출산 등을 앞두고 불안한 젊은이들이 마음을 다잡으며 외는 일종의 주문이 된 것이다.
이 문구가 들어간 인테리어 소품, 문구, 액세서리 등 다양한 상품도 쏟아지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의 쇼핑 코너에서 이 문구를 검색하면 8600개가 넘는 상품이 나온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는 "원래는 독일이 침공해도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자신들을 지배할 수 없으니 흥분할 필요가 없다는 영국 특유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담긴 문구다"며 "세월이 흘러 지구 반대편 젊은이들이 여기서 위안을 찾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했다.
패러디하기 좋은 문장이라는 점도 인기 비결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Keep Calm)' 부분은 그대로 두고 뒷부분에 새롭고도 엉뚱한 메시지를 집어넣어 웃음을 안긴다. 카페에서는 'Keep Calm and Eat Bacon(평정심을 유지하고 베이컨을 먹어라)', 구두 가게에서는 'Keep Calm and Buy Shoes(평정심을 유지하고 신발을 사라)'로 바꿔 홍보에 활용한다. 'Keep Calm and Study Law(평정심을 유지하고 법 공부를 하라)'라는 문구를 넣은 헝겊 가방을 만들어 들고 다니는 로스쿨 학생들도 있다. 나온 지 60년 넘은 이 구절이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패러디 붐을 맞이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