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중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 많고 많은 히어로물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별종의 영화가 있었다. 히어로물 사상 가장 젠틀한 주인공과 가장 경박한 악당이, 잔인하지만 깔끔한 대결을 선보였던 '킹스맨'이다. '킹스맨'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천연덕스럽게 '팡!' 터뜨려버린 괴작이었다. 참 잔인하지만 깔끔한 폭죽놀이였다.
'킹스맨' 1편은 괴작답게도, 주인공인줄 알았던 해리 하트(콜린 퍼스)를 영화 도중 별안간 머리에 총을 쏴버려 즉사시켜 버린다. 영화에서 가장 짜릿하고 쾌감 넘쳤던 '교회학살 신'이 끝나자마자였다. 팬들의 탄식이 천하에 넘칠 때, 마냥 '동네 형' 같았던 에그시(태런 에저튼)가 특급 활약을 펼치며 해리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곧 킹스맨 2의 제작 소식이 들려왔고 이어서 해리의 부활 소식도 알려졌다. 팬들은 환호했고 오매불망 '킹스맨 : 골든서클'의 개봉만을 기다린다. 치솟는 기대감 속에서 마침내 약 2년 6개월여 만에 킹스맨 2가 공개됐고, 해리는 첨단 의학덕분에(현재 기준으로 허무맹랑하기는 하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너그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킹스맨 : 골든서클'은 1편보다 확실히 덩치가 커졌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1편에서 에그시의 라이벌이었던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가 로봇팔을 달고 나타나 에그시와 영화를 통틀어 가장 현란한 액션을 펼치더니, 곧 대부분의 킹스맨 멤버들의 아지트가 미사일 몇 방에 초토화 돼버린다. 이 모든 일이 영화 시작하고 약 30분 안에 다 벌어진다.
스토리의 쓸 데 없는 잔가지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동정이나 연민 같은 감정의 '찌끄래기'도 내던지며, 깔끔하게 없앨 것은 흔적조차 없애버린다. '킹스맨' 시리즈의 이러한 직설법 내지는 단순화법은 이 영화를 다수의 히어로물 사이에서 눈에 띄도록 만드는 강점이다. 그리고 또 잔인한 장면을 묘사할 때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이 없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장면은 오히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했다.
1편에서 가젤(소피아 부텔라)의 '칼발'이 2편에서는 위스키(페드로 파스칼)의 전자채찍이 되었고, 1편의 머리가 터지는 폭죽놀이는 2편에서 사람을 갈아 좋은 고기(?)로 만들어주는 '미트 그라인더(meat grinder)'로 왔다. 특히 2편의 대표 악당인 포피(줄리안 무어)가 즐겨 쓰는 미트 그라인더는 '킹스맨'의 '잔인하지만 깔끔한' 액션의 특징을 거의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을 아예 갈아버린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가. 으레 그라인더 안에 사람을 거꾸로 집어 넣고 기계를 작동시키면 피와 살점이 온 사방에 튀는 처참한 장면이 연출되어야 하지만 '킹스맨'은 그러한 식상함을 따르지 않는다. 포피의 그라인더는 사람이 입고 있었던 옷만 잘게 잘려져 빠져 나오고 사람의 몸은 아주 육질이 좋고 색깔도 좋은 고기로 깔끔하게 갈린다. 그 고기 색이 어찌나 영롱한지 사람고기인 것도 잊고 군침을 흘릴 뻔(?)했다.
'킹스맨 : 골든 서클'은 1편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와 상업적으로 부피를 늘려, 앞으로 킹스맨 시리즈를 좀 더 크게 키워보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야욕은 오히려 '킹스맨'의 오리지널리티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은 듯하다.
'킹스맨'의 오리지널리티는 액션이나 미장센을 만화처럼 묘사한다거나, 이야기나 감정의 군더더기를 뺀 날씬하고 단순한 화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강점을 2편이 고스란히 물려 받았으나 그뿐이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나 갈등의 구조, 인물의 배치 등이 1편에 비해서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스케일은 커졌으나 동어반복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2편이 1편과 달라진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초토화된 킹스맨을 도와주기 위해 '스테이츠맨'이라는 미국산 에이전트 그룹이 새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영국의 신사와 미국의 카우보이가 협력을 하는 모양새다. '킹스맨'의 덩치를 키우기 위한 묘책인 셈인데, 1편에서 영국식의 깔끔한 '수트빨'에 열광했던 팬들은 아무래도 아쉽다. "manners maketh man". 이 대사를 위스키에게 뺏기다니 말이다.
1편을 능가하지는 못했지만 2편 '골든 서클'은 훌륭한 블록버스터 영화다. 2시간을 아깝게 만들지는 않는다. '누구'를 연상시키는 미국 대통령 역을 우스꽝스럽게 능욕하는 것도 통쾌하고, 알게 모르게 약물에 찌든 대중들에게 중독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꽤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 같다.
사회의 부조리를 거리낌 없이 대놓고 조롱하는 태도도 여전하며, 껄렁거리며 능글맞은 스테이츠맨 요원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정장에 검은색 우산을 매치한 킹스맨 요원들의 극적인 대비도 흥미롭다. 그러나 '킹스맨' 1편을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2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1편의 매력을 백분 활용하긴 했으나 1편을 능가하는 2편만의 매력은 찾아 넣지 못한 탓이다.
아마 이제 막 기억을 찾은 해리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해서 제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한 것이 2편이 덜 매력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관객에게 만큼은 해리의 활약도가 ‘킹스맨’을 흥미롭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킹스맨 3편이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해리가 부디 제 정신을 차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