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 전방 적 함정 접촉, 비~상"
강병오 함장(중령·해사52기)의 비상경보 발령 소리에 전 승조원들이 "비상"을 외치며 전광석화와 같이 자신의 위치로 움직인다. 함장이 "긴급잠항"을 명령하자 56m의 기다란 선체가 갑자기 급격히 기울어진다. 그 순간에도 승조원들은 침착한 표정으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209급 마지막 잠수함(9번함)인 이억기함은 이날 16㎞앞에서 적함정을 발견하고 표적 12㎞수심 50m앞에서 독일제 중어뢰SUT를 발사했다. 결과는 격침 성공. 이억기함이 12일 보여준 어뢰공격 시뮬레이션 훈련은 신속하고 빈틈이 없었다. 이억기함(SS-071)은 2000년 5월 진수해 2001년 12월 취역했다. 해군의 1200t급 디젤잠수함 도입 계획의 마지막 잠수함으로 독일 HDW 209 잠수함의 설계와 대우조선의 조립으로 제작됐다. 해군은 국난 극복에 기여한 위인의 이름을 잠수함으로 사용하는데 이억기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로 왜란 내내 전라우도 수군을 성공적으로 이끈 위인이다.
이억기함에는 어뢰(국내산 백상어, 독일제 SUT), 유도탄(캡슐형 하푼), 기뢰 등이 장착된다. 이억기함은 앞서 인도된 장보고함 등 동급잠수함과 달리 잠대함 유도탄 하푼이 장착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1200t급으로 디젤연료와 축전지 두개를 사용하며 항송거리는 연료 보급없이 미국 하와이를 왕복할 정도다. 최대 잠항심도는 약 250m이상, 긴급잠항은 50m이상, 최대속력은 약 22노트(?시속 40여㎞), 승조원은 40여명이 탑승가능하다.
이억기함은 2007년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훈련(PAC-REACH)에 참가해 209급 잠수함 최초로 호주까지 1만580㎞거리를 단독 항해한 이력이 있다. 또 2010년 2016년 RIMPAC훈련에 참가해 하푼 미사일 실사격 훈련에서 미 퇴역함정 '태치함'을 명중시키기도 했다.
◇긴장감 흐르는 출항에서 잠항
"1,2 홋줄 걷어"
강병오 함장의 명령에 함미와 함수에 서 있던 승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잠수함과 예인선 사이에 연결 돼 있던 훗줄을 걷어 올린다.
출항을 알리는 호각이 울리고, 부두에서 이탈한 209급 마지막 잠수함(9번함) 이억기함은 방파제를 지나 훈련구역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수상항해를 하던 이억기함 내부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수상에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잠항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함장의 "각 부서 잠항준비"소리에 모든 승조원들은 빠른 속도로 잠항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잠항 중 이상이 생기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승조원들에겐 사전준비와 점검이 습관화 돼있다.
잠항 직전 잠수함 내부에 있는 탱크에 물을 채워 1200t 잠수함을 음성부력으로 만드는 '충수'가 진행된다.
모든 준비를 마친 기관장의 보고에 함장이 "좋아"라는 응답을 하고 마지막으로 해치를 다으면 잠수함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다.
이억기함이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가고 길고 둥근 막대 모양을 한 잠망경만 물 밖으로 나와 있다. 잠수함은 수면 가까이 올라온 순간이 적에게 발각될 수 있는 순간인만큼 승조원들은 긴장한 채 잠항전까지 스노클 항해에 집중한다.
◇잠항 후 잠수함 생활
잠수함 내부는 거대한 보일러실을 연상하게 했다. 좁은 공간에 침대, 세면실, 조리실, 잠망경 등이 곳곳에 비치돼 있고 함미에는 운행에 필요한 각종 장비들이 탑재돼 있다.
잠수함의 화장실은 단 두 곳뿐이다. 잠수함에 위치한 변기는 일반 변기와는 달리 용변을 보기 전 샤워기 같이 생긴 세척건으로 물을 조금 채우고 다시 변기 아래 개폐구 장치를 폐달을 밟듯 눌러 물과 함께 버리는 식이다. 승조원이 40여명인데 화장실은 두곳 뿐이라 매일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사용을 한다.
승조원들의 생활은 함수 부분에 위치한 1m 남짓한 다용도 탁자 두개에서 이뤄진다. 승조원들은 여기서 밥을 먹거나 회의를 하는 등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4층짜리 2열인 승조원들의 침대는 복도쪽으로 얇은 커튼으로 막아져 있다. 침실의 높이는 약 60㎝정도로 팔꿈치 하나 정도고, 길이는 약 170㎝로 키가 큰 승무원은 몸과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자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한 승조원은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해야 하는 잠수함에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침대가 30여개라 돌아가면서 수면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잠수함의 은밀성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소리'다. 잠수함끼리의 싸움에서 소리가 큰 쪽이 먼저 들키기 때문에 '소리와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잠수함 내부의 모든 소음들은 관리되고 통제된다. 이것은 장비뿐만 아니라 승조원들의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화소리는 물론이고 발소리도 작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유이하게 큰 소리가 나는 것은 함장의 명령소리에 다같이 대답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
함장을 포함한 모든 승조원들은 허리춤에 작은 개인손전등을 차고 있다. 잠수함은 깊은 바다, 암흑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정전이 되면 완전한 암흑세계가 된다. 함내에 있는 모든 조명은 축전지로부터 생성 전류로 작동하는 인공조명이다. 비상상황으로 전력 차단 시 함내는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이게 된다. 물론 함내 곳곳에 비상등이 설치돼 있지만 모든 승조원은 개인손전등을 소지하고 있다.
어두운 함내에서 이동이 용이하게 콘센트 등은 벽에 위치하고 최대한 바닥에는 물건을 두지 않는다. 잠수함은 임무를 마칠 때까지 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에 당직자가 일출,몰 시간에 맞춰 잠수함의 점,소등을 해 밤과 낮을 구분한다.
승조원은 함장(중령), 무장관(소령)을 포함한 장교 7명을 제외하고는 부사관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병이 없는 이유는 양성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최원석 부함장 (소령)은 "잠수함 승조원은 밀폐된 공간,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정밀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하고, 교육과정만 육상교육6개월과 실습기간6개월로 1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한번 작전을 나가면 보통 30일 정도 걸려 외부소식이 차단되는 등 잠수함 근무 환경 때문에 승조원을 구하기 매우 힘든 편이다.
한 승조원은 "한 번씩 육지에 나가 핸드폰을 켜보면 그간 너무 많이 쌓인 카카오톡들이 다 없어지고 최근 3일치만 남아있다"며 "그간 밀린 소식들을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듣는다"고 말했다.
◇디젤 잠수함의 고충···핵잠수함 도입될까
디젤 잠수함인 이억기함은 디젤연료와 축전지 두개를 사용한다. 축전지는 함수와 함미쪽 각각 1개씩 위치해 있는데 축전지의 용량이 떨어지면 축전지 충전용 산소공급을 위해 잠시 수중가까이로 올라와 '스노클'을 해야 한다.
디젤 잠수함은 최대 속력으로 적 잠수함 추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많게는 매일2~3회 가량 수면에 올라와 축전지 충전이 필요하다.
잠수함은 수면 가까이에 올라와 있는 순간이 적에게 발견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때문에 모든 승조원들이 긴장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최근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이른바 핵잠수함은 수상 스노클이 필요없다. 적 감시망에 노출되지 않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도도 디젤잠수함보다 세배 이상이다. 핵잠수함은 최대 속력으로도 사실상 무제한 탐지 및 추적 임무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각에선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미원자력협정에 의해 미국산 우라늄을 20%미만까지 농축할 수 있지만 군사적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핵잠수함 도입이 추진된다면 한미협상이 필수적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우리군의 자체 방어전략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 이른바 핵잠수함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핵 잠수함의 필요성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으로 처음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같은달 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핵잠수함 도입을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하다 중지된 핵추진 잠수함 사업이 재추진될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