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관련 국민 2만명 여론조사가 다음 주 마무리된다. 이를 통해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발한 후 한 달 동안 공론조사가 진행된다. 의아한 것은 공론화 규칙(規則)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시민참여단의 최종 의견 수렴에서 한 표라도 더 나온 쪽으로 결정짓는 것이라면 간단하다. 이 문제가 그렇게 해도 되는 건지 알 수 없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적법 절차를 거쳐 이미 1조5000억원이 투입된 사업이다.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도 막중한 사안을 결정하거나 한 번 정한 걸 뒤집으려면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신고리 문제는 막중하기도 하고 한 번 결정된 걸 뒤집는 경우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의 얘기도 흥미롭다. 만일 공론화 시작 단계에선 건설 중단 찬반이 60대 40이었다가 숙의 과정을 거쳐 51대 49로 바뀌었다면 어떻게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또는 50%는 끝까지 ‘판단 못 하겠다’고 하고 나머지 절반이 30%대 20%로 갈렸다고 치자. 30%가 20%보다 많으니 그 방향으로 가자고 하면 되나. 이제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신고리 건설 중단’에 대해선 찬반이 각각 40% 내외로 팽팽하다. 원자력 에너지 자체에 대해선 찬성 60%, 반대 30%쯤 나온다. 여론은 원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구 밀집지에 추가로 짓는 것은 부담스러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론조사에서 단순히 ‘5·6호기 건설 중단’ 찬반만 물을 건 아니라고 본다. 고리·신고리 단지에서 가장 노후 시설인 고리 2호기 폐쇄 조건으로 신고리 5·6호기를 짓자는 대안(代案)을 생각해볼 수 있다. 3세대 원전(신고리 5·6호기)은 2세대 원전(고리 2호기)보다 안전성이 10배 강화됐다. 그렇다면 ‘고리 2호 폐쇄-신고리 5·6호 건설’ 패키지는 현재보다 안전성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 된다. 더 나아가 ‘5·6호기를 짓기는 짓되 입지(立地)를 다른 곳으로 옮겨 짓자’는 아이디어도 가능하다. 이런 유연한 대안들을 제시하면 공론화 양상은 아주 달라질 것이다. 신고리 공론 작업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대표성을 결여했다는 비판이 많다. 그 상황에서 공론조사 결과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 결론을 누가 흔쾌히 받아들이겠나. 작은 골대, 큰 골대를 만들어 놓고 작은 골대로 들어가면 당연히 내가 이기고 큰 골대로 들어가도 내가 이긴다고 해선 곤란한 것 아닌가. 골대 크기는 미리 정해놔야 하는데 그렇다면 또 그걸 누가 정하는 게 맞나. 한국갤럽 최근 조사를 보면 스스로 ‘진보’라고 한 사람의 56%가 5·6호기 건설 중단을 찬성했다. ‘보수’라는 사람은 29%밖에 안 됐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는 46%가 건설 중단에 찬성했고 반대자는 7%만 찬성했다. 이렇게 이슈가 정치 진영 싸움으로 흘러버리면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격투기가 된다. 원전 건설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이 애당초 문제였다. 다수(多數)를 따라가는 것이 민주적 정당성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동성애, 낙태, 간통 같은 문제라면 그게 맞을 수 있다.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다르다. 아카데미 수상작은 관람객 숫자 갖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문가들이 판정하고, 콩쿠르 채점도 전문가들이 한다. 게다가 에너지 구성처럼 여러 측면의 균형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고 그것이 국가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시민 상식에 맡기는 건 무리일 것이다. 전문가 의견을 듣자고 하면 ‘원자력 마피아’니 하며 이해 충돌을 문제 삼는다. 원자력 전문가만 전문가는 아니다. 신재생 전문가, 에너지 경제학자, 갈등 전문가, 환경 전문가도 전문가다. 광범위한 전문가 의견을 들은 후 법적 대표성 있는 정부나 국회가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입력 2017.09.0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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