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부근에 있는 한 만화카페(만화방과 카페가 접목된 놀이 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초등학생 4명이 구석에 모여 만화책 한 권을 돌려보고 있었다. 곁눈질로 보니 남녀 간의 노골적 성관계 장면이 잇따라 나왔다. 이 만화책은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하는 성인 웹툰(인터넷 만화)을 엮은 단행본이었다. 인터넷에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성인 인증을 받아야 볼 수 있다. 하지만 만화카페에선 아무런 제지가 없다. 만화카페 주인은 얼핏 봐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성인 만화책을 내놓았다. 이 만화카페는 여름방학을 맞아 '2시간 이용 시 탄산음료 50% 할인'을 시행 중이었다. 만화카페 점원은 "어린 학생을 끌기 위한 이벤트"라고 했다.

예전 만화방들은 '성인 만화책 코너'를 별도로 만든 경우가 많았다. 3~4년 전부터 우후죽순 생긴 만화카페는 이런 별도 코너를 만들지 않는다. 성인 만화책이 일반 만화책 사이에 섞여 있다 보니,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성인 만화책을 꺼내 든다.

최근 PC방에서는 초등학생들이 '15세 이용가' 게임을 버젓이 한다. 잔인하게 총으로 상대를 죽이는 '슈팅 게임' 같은 것들이다. 원래 이 게임은 PC방 점주가 어린이에게 이용을 허락하면 안 된다. 하지만 게임산업진흥법이 올해 초 개정되면서 '15세 이용가' 게임을 초등학생에게 제공해도 점주는 처벌받지 않게 됐다. 워낙 신고가 많이 들어오다 보니, 경찰력 낭비라며 점주를 처벌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을 바꾼 것이다.

실질적인 단속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유해 매체물인 성인 만화책·게임 등을 청소년에게 판매·대여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수사 인력이 부족해 실제 적발되는 경우는 없다. 서울시에 이런 단속을 담당하는 이는 단 한 사람이다. 그마저 다른 업무를 함께 맡는다. 이 때문에 최근 2년간 단속 실적은 단 한 건도 없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인터넷에서 초등학생들이 몰래 성인물을 보면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만, 만화카페 등 공개된 장소에서 제한 없이 성인물을 접하게 되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 잘못된 정서에 물들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