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휴가를 쓰는가(用), 쓰게(苦) 넘기는가
'잘 놀아야 일도 잘 한다', 방전이 아닌 충전의 시간
7말 8초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이맘때면 사무실에선 동상이몽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구성원들은 들뜬 휴가 계획을 늘어놓으면 철딱서니가 없어 보일까봐, 표정관리에 들어간다. 일부 관리자들은 직원휴가와 무두절(두목이 없다는 의미, 즉 상사휴가)의 이중과세가 될까 지레 걱정해 일정관리를 한다.
휴가 일정 선택의 계산속은 직장문화에 따라 다르다. 같은 기간에 일제히 휴가를 가는 경우는 오히려 편하다. 선택이 가능한 경우, 상사의 일정과 겹치게 할 것인가, 엇갈리게 할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상사의 휴가와 겹치게 하면 일체의 연락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에 엇갈리게 가면 무두절 휴가와 자신의 휴가를 이중으로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가의 한자 쉴 휴(休)를 살펴보라. 글자 그대로 사람이 나무 그늘 밑에 가서 쉬는 모습이다. 겨를 가(暇)는 日(날 일)’과 빌릴 가(叚)가 합쳐진 글자이다. 즉 시간을 빌리는 것이다. 겨를을 얻어 지낸다는 뜻이다. 휴가를 뜻하는 영어 vacation의 어원은 “비어있다”란 뜻이다. holidays는 성스러운 날에서 유래했다.
공부를 하는 장소인 학교(school)는 라틴어 schola에서 유래했다. 스콜라(schola)는 틈, 여가, 자유시간이란 뜻이다. 당시 스콜라는 노동력을 면제받은 귀족의 자제나 사제들만이 다녔다. 겨를이, 여가가, 틈이 나야 창의적 질문과 사고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서구에선 유대인 중에서 창의적인 천재가 많이 나온 이유를 안식일 등 휴식의 강제화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다.
리더인 당신, ‘신입사원인데도 여름휴가는 알토란처럼 챙겨먹는다고 내심 불편해’하고 있지 않은가. ‘일과 삶의 균형은 무슨? 통합이 더 중요해’라며 10년간 휴가 안간 초년병 시절을 직장생활 훈장처럼 내세우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한가? 휴가 중에도 카톡은 체크하며 나름 될성부른 떡잎과 비떡잎을 구분할 지표로 삼으려는 속셈을 갖고 있진 않는가?
◆ 휴가는 독인가, 득인가. 세대 별로 갈리는 휴가에 대한 인식
휴가가 쓴 지(苦), 아니면 휴가를 쓰는 지(用)에 대한 인식은 세대 별로 극명하게 갈린다. 한 조사에 의하면 휴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20대는 ‘이직(移職)까지 고려한다’, 30대는 ‘업무능률이 저하된다’라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50대는 ‘휴가 사용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대는 쥐꼬리만한 연차도 다 소진하는 반면, 50대는 소꼬리만한 연차를 가졌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기성세대는 휴가조차 국가경제와 관련시킨다. ‘연차 휴가 소진사용’을 선언한 문재인정부마저 삶의 질, 행복보다 소비 진작 등 경제적 파급효과로만 계산해 설명할 정도다.
◆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 휴가 다녀와야 일의 능률이 올라간다
구체적 연구결과를 살펴보자. 미국의 한 연구그룹의 보고서는 ‘휴가를 11~15일 적게 사용한 직장인은 전부 사용한 직장인보다 과거 3년 동안 승진하거나 보너스를 받은 사례가 6.5%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결론이다.
론 프리드만 박사(Ron Friedman)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휴가의 구체적인 효과’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휴가기간의 재충전 경험은 우리에게 집중력, 정신의 명료성을 갖다주고 통찰력을 높여준다.
또 2014년 미국의 갤럽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직장인들의 삶 웰빙 지수에서 ‘휴가는 연봉보다 요긴한 지수’이다. 1년에 2만4천 달러를 버는 사람이 1년에 5번 휴가 가는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한다. 닐슨 여론조사에 의하면 만족스런 휴가를 다녀온 이들 중 70%이상이 일에 만족했다. 반면에 휴가를 갔다 오지 못한 사람은 46%만이 직업 만족도를 보여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미국의 일부회사는 유급 여름휴가를 주는 것은 물론 휴가기간 중 회사 이메일 체크나 전화 연락을 하면 휴가비를 전액 반환하는 내규까지 만든 곳도 있다고 한다.
◆ 리더들이여 ‘시간을 빌려 나무 아래에서 쉬도록’ 해주라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를 제대로 사용하는 능력은 모든 생활의 기초이므로, 시민들에게 여가 사용법을 훈련시키지 않는 정치가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오늘날의 리더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발언이다. 휴가 쓰게(苦) 넘기지 말고, 달게 쓰라(用). 휴가 풍속이야말로 조직 리더십의 확실한 지표다.
◆ 리더십 스토리텔러 김성회는 'CEO 리더십 연구소' 소장이다.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 출신으로 각 분야 리더와 CEO를 인터뷰했다. 인문학과 경영학, 이론과 현장을 두루 섭렵한 '통섭 스펙'을 바탕으로 동양 고전과 오늘날의 현장을 생생한 이야기로 엮어 글로 쓰고 강의로 전달해왔다. 저서로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성공하는 CEO의 습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