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이사회 무산…"추후 개최 여부 논의"]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일시 공사 중단 여부를 의결하려 했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어제(13일) 열리지 못했다. 한수원 노조와 원전 건설 지역 주민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결사 반대'를 외치며 이사회 개최를 막았기 때문이다. 오늘(14일) 아침 한수원이 경주의 한 호텔에서 기습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일시 중단 안건을 통과 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공론화에 부치겠다며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20분 만에 원전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그동안 공기업 이사회는 정부 거수기에 불과했지만 이번만은 상황이 정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7일 열린 한수원 이사회는 공사 중단 여부를 결론짓지 못했다. 아무리 거수기라 해도 난데없고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제 다시 이사회를 열기로 했으나 노조와 지역 주민들의 저지로 무산되자 한수원 측이 예고 없이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안건을 통과 시켜 버렸다. 노조 측은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제 공은 공론화 위원회로 넘어가게 됐다.

공정률 28.8%에 달하는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를 공론화 기간 3개월만 중단해도 1000억원 넘는 손실이 발생한다. 국민과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 결정을 이사회가 해야 하는데 노조가 나서서 막는 상황이다. 이날 한수원 노조는 물론이고 국내 20여 개 전력 공기업 노조들이 유인물을 내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국책 사업의 중단은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법적 근거가 없는 초법적인 국가 행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 주장에 틀린 말이 없다.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38개월간 심의를 거쳐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법적 절차를 밟아 결정된 국책 사업을 5년 임기 대통령이 중단시키겠다고 무리하게 공약하고 졸속으로 밀어붙여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켜 놓았다. 전 세계에 지진만으로 인한 원전 사고는 단 한 건도 없는데도 지진 빈발국도 아닌 한국에서 지진 때문에 국가 전력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원전을 갑자기 중단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엉터리 이유를 대더니 이제는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 생활, 전기 요금, 산업 경쟁력, 국가 안보 문제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듯하다.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권력 힘이 센 새 정권 초기라고 그냥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세계적으로 안전도가 입증된 모범 수출 산업이기도 하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이후 21조원 규모 영국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한국형 신형 원전 모델을 수출할 기회가 열리게 됐다. 그럼에도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는 다 망가질 판이다. 이미 새 정부 들어 신규 원전 건설은 신고리 5·6호기를 제외하고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국내에서 건설하지 않는데 무슨 명분과 역량으로 다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겠는가. 역대 새 정부 초기마다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이런 황당한 일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