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알리바바픽쳐스가 115억원을 투자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리얼'이 우여곡절 끝에 최근 개봉했다. 아시아 최고의 블록버스터로서 기대를 모았던 '리얼'은 사드 배치로 중국과의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개봉이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중국의 투자와 관련해 영화 '리얼' 감독은 "크리에이티브에는 제약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영화 곳곳엔 중국의 색깔이 짙다. 상하이를 연상하게 하는 휘황찬란한 도시 배경 그리고 차이나타운의 액션 장면, 화려한 카지노 장면 등은 투자자인 중국 시장을 의식한 설정으로 보인다.

영화 '리얼' 스틸컷

중국 색깔이 섞였지만 '리얼'의 흥행은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리얼'이 중국에 개봉한다면 흥행은 어느 정도 떼어 놓은 당상이겠으나, 사드 문제가 얽혀있는데다 영화 전반에 섹스, 살인, 마약 등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설정 때문에 중국에서 개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톱스타 김수현이 출연하는 영화에 거액의 '차이나 머니'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영화의 완성도나 인기를 떠나 꾸준한 화제다. 중국은 이미 세계 영화시장의 '큰손'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中알리바바픽쳐스, 김수현 영화 '리얼' 투자 계약 체결]

왜, 중국일까?

중국 영화 시장은 매년 평균 3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흥행을 주도해왔다. 한국에서는 1000만 관객이 '대박'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이지만, 중국에서는 일주일 안에 1000만명을 훌쩍 넘길 정도로 그 규모가 남다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의 할리우드가 '찰리우드(China와 Hollywood의 합성어)' 중국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는 보도도 내놨다. 미국 다음으로 큰 영화 시장인 중국에서 지난해 개봉된 영화의 흥행 수입은 66억 달러로 미국의 114억 달러에 한참 뒤져 있지만 수년 뒤에는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왼)CGV 베이징 이디강 로비에서 영화 시작을 기다리는 관객들 모습. (오)CGV 상하이 치바오점의 극장 내부 모습.

물론 중국 영화 시장에서 '대박'이 난다고 해서 그에 따른 엄청난 수익이 뒤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해외 배급사가 배급을 진행해 박스오피스 수익을 나누더라도, 제작·배급사와 극장이 티켓값을 나눠가지는 비율이 5대 5다. 거기에다 중국은 자국 영화 산업을 위해 개봉 조건을 제한하거나 여러 검열을 거쳐 수입 여부를 판단하는 등 개봉 전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이 중국 시장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13억 인구를 거느린 거대 시장인 중국에서 대박이 날 경우 흥행 성적 기록에도 큰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전 세계 11억 달러의 흥행을 기록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경우 중국 시장을 겨냥해 중국에서만 3억2000만 달러의 성적을 거뒀다. 북미 시장에서 2억4000만 달러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보면 중국에서의 흥행이 엄청난 부분을 차지한 셈이다.

['찰리우드'가 2017년 할리우드를 넘어선다]

["할리우드 넘볼 잠재력, 찰리우드를 주목하라"]

중국 관객이 보면, '중박' 혹은 '대박'

거대 시장인 중국의 힘은 개봉 영화의 흥행 수익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북미에서 혹평을 받던 미국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2억1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영화 제작사는 레전더리 픽쳐스로, 중국 완다 그룹이 인수한 회사다. 이 영화는 북미에서도 5000만 달러를 넘지 못했지만, 중국에서만 전세계 흥행 수익인 4억3000만 달러의 절반 수준의 흥행을 기록한 셈이다.

중국서 개봉한 주요 영화의 흥행 수익 성적표

중국 입김 좀 들어간 영화들, 흥행 결과는?

이제 할리우드 영화에서 텐센트, 알리바바와 같은 중국 기업의 크레디트를 보는 것은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부터 본격 '중국 돈'이 들어간 영화들을 몇 개 추려봤다.

▲ 본격적으로 중국 자본이 투자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중국의 후아후아 미디어가 투자했다. 배경도 중국이고 리빙빙, 한경 등 중국 배우가 대거 출연했다. 다만 엉성해진 스토리 구조와 극의 흐름을 깨뜨리는 간접광고(PPL) 남발로 혹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중국에서만 3억200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는데, 북미와 중국 말고는 1억 달러가 넘은 국가가 없었다.

['트랜스포머4', 中서 4000만 관객 넘어섰다]

▲ 중국의 인터넷 거상 마윈이 세운 알리바바 픽쳐스가 공동제작을 맡은 '미션임파서블5'에는 미국 CIA내 거짓말탐지기 분석가로 중국 여성이 나오고, 죽었거나 생존여부가 불상인 전세계 비밀 요원의 얼굴 중 중국인이 스쳐간다. 동양 칼을 쥐고 칼싸움을 하는 등 중국 관객에 대한 팬서비스 부분이 많다.  ▶ 관련 기사 보기

영화는 전세계 누적 6억8200만 달러의 흥행 수익 중 중국에서만 1억3500만 달러를 벌었다. 트랜스포머와 마찬가지로 북미(1억9500만 달러)와 중국 빼고는 1억 달러를 넘은 국가는 없었다.

▲ 마술을 내세운 영화였던 '나우유씨미'는 차이나필름이 투자자로 참여한 2편에서 대만 톱스타인 주걸륜을 출연시키며 중국인 마술사 캐릭터를 추가해 중국에서의 흥행을 견인했다.

1편에서는 전 세계 3억5000만 달러 중 중국 흥행이 2000만 달러에 그쳤지만 주걸륜을 내세운 2편은 전 세계 총 3억3000만 달러 중 9700만 달러라는 중국 흥행을 기록했다.  이렇게 되자 예정돼 있던 3편의 제작은 연기되고, 주걸륜을 중심으로 중국 배경에 중국 배우들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 제작이 확정됐다.

['나우유씨미2' 중국판 스핀오프 만든다… 이유는?]

▲ 중국 완다 그룹의 레전더리 픽처스는 '콩: 스컬 아일랜드'에 중국 배우를 출연시켰다. 중국 배우의 출연과 완다 그룹이 소유한 중국 내 최대 극장 체인망의 시너지가 합쳐지면서, 중국에서만 1억6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샌 역으로 출연한 중국 여배우 경첨은 영화 내에서 캐릭터가 불분명해 '끼워 넣기' 오명을 얻었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그레이트 월'과 '퍼시픽 림: 업라이징'에도 출연하게 됐다.

▲ 중국 전영 유한공사의 자회사 차이나필름이 투자해 10%의 지분을 확보한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은 전 세계 15억 달러, 중국에서만 3억90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벌어들였다.

이어지는 8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도 중국에서 3억9000만 달러라는 성적을 올렸다.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은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가장 많은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로 기록됐다.

['분노의 질주8', 中 박스오피스 신기록… 개봉 첫날 750억 수익]

▲ 중국 부동산 기업 완다 그룹이 미국의 유명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내놓은 첫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맷 데이먼이 송나라 시대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인류를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괴수군단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 맷 데이먼과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장이머우(장 예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기대를 모았다. 미·중 합작 사상 최대인 제작비 1억5000만 달러가 투입됐다.

그러나 전 세계 수익 3억3100달러 중 북미 흥행수익 매출은 4500만 달러에 그쳤고, 중국에서 1억7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이 발생했지만 애초 기대에는 못 미쳤다. '그레이트 월'의 실패로 중국과의 합작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추세다.

[멧 데이먼 '그레이트 월', 지나친 중국 미화에 중국 관객도 외면?]

큰 영화 시장과 막대한 자본까지,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찰리우드'는 이제 현실이다. 중국에서는 매일 25개의 스크린이 생겨난다고 할 정도로 영화관이 늘어나더니, 지난해 11월엔 이미 영화관수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중국의 입김이 들어가면서 영화의 내용이 바뀌거나 완성도가 떨어지기도 한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브래드피트가 출연한 좀비 영화 '월드워Z'처럼 좀비 바이러스 발생지를 중국에서 러시아로 바꾸는 등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내용이 바뀌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중국에는 돈이 있고 거대한 시장이 있지만 미국처럼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기술력은 아직 부족하다. 다만 '찰리우드'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라면, 중국과의 합작 때 여러 문제점들을 개선해 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