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가톨릭 사제들이 일반 농민보다 훨씬 잘 먹었다지만, 이런 미식(美食)을 즐기진 못했을 것이다. 서양 3대 진미라는 푸아그라(거위 간) 구이에 이어 레몬·고수로 맛을 낸 바닷가재, 커피 소스를 곁들인 양고기 구이가 차려진 레펙토리오(Refectorio). 이곳은 한때 수도사들이 침묵 속에 공동 식사를 하던 곳이지만,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이 미식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시끌벅적한 레스토랑이 됐다.
스페인어로 공동 식당이란 뜻의 레펙토리오는 1145년 가톨릭 프레몬트레 수도회가 스페인 바야돌리드에 세운 아바디아 레투에르타(Abadia Retuerta) 수도원의 부속 건물. 스페인 국가 지정 문화재이기도 한 이 수도원에는 한때 수도사 수백명이 거주했지만, 1800년대 쇠락하기 시작해 100년 가까이 빈 채로 방치됐다. 1988년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인수해 2012년 호텔 겸 와인 양조장으로 재단장했다. 레펙토리오는 1박 50만원부터 시작하는 이 고급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으로, 프랑스의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으로부터 별 1개를 받았다.
아바디아 레투에르타처럼 '환속(還俗)'하는 교회 건축물이 유럽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 있는 셀렉시스 도미니카넌(Selexyz Dominicanen)은 1294년 세워진 도미니크회 교회 안에 들어선 서점이다. 교회의 층고를 그대로 활용해 3층 높이 서가를 줄지어 세워놓은 내부가 압도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역시 마스트리흐트에 있는 크루이셰렌 호텔(Kruisheren Hotel)은 15세기 수도원을, 벨기에 스피리토 마르티니(Spirito-Martini)는 성공회 교회를 고급 클럽으로 개조했다.
영국 런던 오닐스(O'Neil's)는 1902년 세워진 장로회 소속 교회가 아일랜드식 펍(맥주집)으로 탈바꿈한 경우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교회를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으로 개조했다. 성(聖)에서 속(俗)으로 용도 변경되는 교회 건축물이 늘어나는 건, 교인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교회 건물을 유지·보수하는 데 필요한 비용 마련은 어렵기 때문이다. 교파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 변경만 허용하며,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꼼꼼히 검토해 교회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만 승인한다.
이용자들이나 주민들 반응은 호의적인 편. 아바디아 레투에르타 인근 포도밭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건축물이 이렇게라도 보존되니 다행"이라고 했다. 런던의 한 교회를 개조한 주택에 사는 여성은 AFP 인터뷰에서 "교회 건축물의 디테일이 살아있어 아름답다"며 "가끔 '교회에 산다는 게 신성모독 행위는 아닐까 죄책감이 들긴 한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