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두 시간가량을 그 가게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가면서 빨간 팬티를 열 장이나 구해오셨더라고요(웃음). '앞으로 이 속옷 입고 다니면 애도 곧 들어서고 돈도 잘 벌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핑 돌았지 뭐예요."

세무사 박모(33)씨가 말한 '그 가게'는 지난 4월 문 연 대백아울렛 동대구점이다. 개장 당일 빨간색 속옷 무려 10억원어치를 매장에 풀어놓고 팔았는데, 나흘 만에 모두 동났다. 일부에선 서로 사려고 쟁탈전까지 벌였다고 한다. 대백아울렛 측은 "경남 지역에는 '개업한 가게에서 빨간 속옷을 사면 두고두고 행운이 따른다'는 속설이 있다"면서 "개업 때 빨간 속옷은 무조건 팔린다"고 했다.

2009년 당시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에 빨간 속옷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당시 빨간 속옷만 17억원어치가 팔렸다.

빨간 속옷 쟁탈전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속설은 영남 지역 바닷가에서 시작됐다. 조업에 나갔던 배가 돌아올 때 만선(滿船)이면 빨간색 깃발을 꽂았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이후로 영남 지역에서 빨간색은 재운과 건강의 상징으로 통해왔다. 2009년은 유통업계 마케팅에 힘입어 빨간색 깃발이 '빨간 속옷'으로 재탄생한 시기다. 그해 3월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 문 열 당시, 개점 첫날부터 주말까지 빨간 속옷만 8억2000만원어치 팔려나갔다. 이때 수백 명이 한꺼번에 빨간 속옷을 사기 위해 몰려들면서 직원들이 안전 사고를 막으려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는 진풍경까지 벌였다.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도 2009년 12월 개장하면서 빨간 속옷 프로모션으로 17억원 매출을 올렸다. 2014년 12월에는 또 다른 기록이 세워졌다. 롯데몰 동부산점에서 빨간 속옷이 30억원어치나 팔린 것이다. 비비안·비너스·트라이엄프 등 국내 유통되는 모든 업체의 빨간 속옷이 이날 한자리에서 팔려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8월엔 빨간 속옷의 지역 경계가 깨졌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나흘 동안 빨간 속옷만 50억원어치가 팔렸다. 영남 지역의 빨간 속옷이 '전국구'가 된 것이다. 작년 6월 신세계백화점 김해점 오픈 행사에서도 빨간 속옷은 43억원어치나 팔려, 빨간 속옷 행운설의 건재함을 재입증했다.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도 '개점 빨간 속옷'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부모님이 무려 열 명과 싸워 겨우 사온 행운의 그 빨강!' 같은 문구와 함께 애초 가격의 두 배 혹은 세 배에 되팔리는 식이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 측은 "개점 행사 2~3주가 지나고 나면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 '행운의 빨간 속옷' 판매가 반짝 늘어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