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미쇼, 빈센트 밀레이, 니카노르 파라, 필립 자코테···. 생경한 외국 시인의 시집이 12일부터 차례로 선을 보인다. 1인출판사 읻다는 최근 '세계시인선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그간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유명 외국 시집을 엄선해 두 달 간격으로 펴내기로 했다. 최성웅 대표는 "소비자가 아닌 독자가 소장하고 싶어 하는 가치 있는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된 기획"이라고 말했다. "번역에만 치중해 원어(原語)를 무시하거나, 해석과 주석에 사로잡혀 시의 언어를 잃은 '외국 시집' 대신 이미지와 호흡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세계시인선이 부활하고 있다. 태학당, 청하, 솔, 열림원, 고려원, 문학의숲 등의 출판사가 과거 내놓던 세계시인선은 수요 부족을 호소하며 이미 맥이 끊긴 상태. 부활은 1인출판사가 이끄는 모양새다. 1인출판사 봄날의책은 지난 1월 노르웨이 시인 울라브 하우게 시선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를 냈다. 박지홍 대표는 "당시 분위기나 이슈에 따라 기민하게 시인선 목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의 단문(單文) 바람을 타고 젊은 층에서 퍼진 시 열풍도 한몫했다. 박 대표는 "최근 국내의 튼튼한 시 독자층이 구축되고 있다"며 "시에 대한 관심이 국내를 넘어 다른 문화권으로도 넓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출판사는 이달 말 일본 사이토 마리코가 한국어로 쓴 시집 '단 하나의 눈송이'도 펴낼 예정이다.
대형 출판사도 분주하다. 민음사는 창사 50주년이었던 지난해부터 세계시인선을 새로 내기 시작했다. 1973년 탄생해 2년 뒤 마무리됐다가 1994년 개정판을 냈던 시리즈로, 이번엔 개정판 70권과 신간 30권까지 총 100권을 낸다는 계획. 현재 21권까지 출간돼 3만 권이 팔렸고, 특히 보들레르 '악의꽃'의 경우 6000부가 팔리는 등 뜻밖의 성과를 내고 있다. 양희정 부장은 "민음사는 '세계시인선'을 통해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한 만큼 반드시 읽어야 할 텍스트를 찾아 소개할 것"이라며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 등 아랍어 작가 등의 작품도 원문을 번역해 시문학사에 구멍 난 곳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