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즉 인공지능과 ICT, 생명과학이 전 세계의 경제와 산업, 문화를 이끌어 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필자가 20여 년 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학생·학부모를 만나고, 선진 교육제도를 접하며 느낀 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려면 교육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며 교육 커리큘럼을 개혁해 왔다.

해외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학제를 경험한 학생들과 상담해 보면, 첨단 산업에 대한 포부와 자기의 경쟁력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선진 학제에서는 토론이나 대화 중심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진로나 진학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을 하는 대표적인 학제로 국제 학위 프로그램인 'IB 디플로마(Diploma)'와 미국 학제인 'AP 캡스톤 프로그램(Capstone Program)'을 꼽을 수 있다.

IB 디플로마에서는 학생들이 문·이과 과목을 골고루 학습하며, 대학 수준의 논문(Extended Essay)을 통해 한 가지 주제를 깊게 탐구하며 다양한 분야 지식을 융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TOK(Theory of Knowledge) 수업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학습을 병행한다. AP 캡스톤 프로그램 역시 한 가지 주제를 팀·개인 과제로 나눠 깊이 토론하고 심도 있는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최근 대학에서 수준 높은 토론·탐구 역량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 같은 능력을 키워주는 IB 디플로마와 AP 캡스톤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싱가포르 역시 새로운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교육이 한창이다. 기존의 문제 풀이 중심 학습에서 벗어나 PBL(Project based learning·프로젝트 중심 수업) 방식 학습으로 선회하고 있다. 실제 기업과 산업계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조사하고, 세미나형 수업을 통해 해답을 찾아낸다. 이처럼 실생활과 실제 연구에 도움되는 학습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세계 시장에 고급 인력을 공급하는 인도의 교육 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식 학제가 바탕인 인도 교육은 토론식 수업과 연구 과제 발표가 많은 게 특징이다. 특히 수학·과학 수업은 수준별로 세분화돼 학생들이 자기 역량에 따라 수업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인도에서 유독 수학·과학 분야 고급 인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험 역시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풀이·증명 과정을 중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의 학제 개혁 시도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센터시험과 사립대학 본고사가 주를 이루던 형태에서 벗어나 최근 입학사정관전형인 AO전형을 활용, 30만명 이상의 해외 유학생을 유치할 계획을 세우며 인재를 모으고 있다. 또한 200여 개 고교를 IB 디플로마 시범학교로 선정하는 등 새 학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중이다.

새로운 인재 육성은 입시 정책이 아니라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즉 교육 방식에 달린 문제다. 안타깝게도 지금 쏟아지는 대선 후보들의 교육 정책을 보면 기존 입시제도에서 방법이나 비율 정도만 수정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하지만 교육 정책은 '우수 인력을 길러내는 학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

선진국의 기술과 성과를 뒤쫓는 팔로우 업(Follow up) 전략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는 먹히지 않는다.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미래를 주도할 기술을 예측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주입식·암기식 수업이 아닌 PBL 중심 수업을 통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도 세상을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사도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서 벗어나 토론을 이끌어 내는 멘토 역할을 하며 치열한 연구와 발표로 학생 역량을 키워줘야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다.

김철영 세한아카데미 대표